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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街 막전막후]위기의 한나라 왜 이러나

입력 | 2005-03-04 18:06:00


▽복잡한 당내 지형=먼저 당내 2대 그룹인 수도권과 영남 출신의 시각차가 크다. 영남 지역에 보수 성향 의원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수도권 출신 의원들은 주로 개혁 성향을 띠고 있다. 수도권 출신들은 한국 정치의 ‘중원(中原)’을 선점하기 위한 ‘수도권 역할론’을 펴고 있지만 영남 출신들은 ‘영남우선주의’를 고수한다.

이 같은 지역적 이념적 차이는 지난해 국가보안법 논의 과정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보수 성향인 김용갑(金容甲) 이방호(李方鎬) 의원 등은 국보법 현행 유지, 개혁 성향의 남경필(南景弼) 원희룡(元喜龍) 의원 등은 국보법 대폭 개정을 주장했다. 대폭 개정 쪽엔 대여 강경파 그룹인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洪準杓) 의원 등도 가세했다. 박근혜 대표가 중재에 나서 국보법 개정안을 마련했으나 양측의 감정적 골은 깊어졌다.

최근 행정도시법 찬반 논란 과정에서는 수도권 출신들마저 나뉘었다. 수도권 중도파인 맹형규(孟亨奎) 박진(朴振) 임태희(任太熙) 의원들이 반대편에 서면서 박 대표를 비롯한 당직자 그룹과 각을 세웠다.

▽태생적 한계=한나라당은 그동안 당의 몸집을 불려오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당의 ‘색깔’을 찾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탄생은 1990년 1월 3당 합당을 거쳐 태어난 민자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자당은 1996년 총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으로 변신한다. 이때 이회창(李會昌) 이홍구(李洪九) 전 국무총리 같은 제도권 인사와 이재오 김문수 의원을 비롯한 재야그룹이 동시에 입당했다. 이어 1997년 11월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한나라당이라는 간판을 단 뒤 8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복잡한 이합집산에서 당의 정체성을 찾기보다는 선거 승리를 위한 세력 확장에만 치중했던 게 사실이다.

한나라당은 2000년, 2004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물갈이를 단행했으나 이 같은 태생적 한계를 넘지 못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2003년 민주당과의 과감한 결별을 통해 당의 ‘색깔’을 더욱 분명히 함으로써 정체성 시비를 비켜갔다.

김형준(金亨俊)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한나라당이 그동안 공천 물갈이를 단행해 왔지만 근본적인 구조 변경은 시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리더십 부재=지도부의 리더십 부재도 당 혼란에 한몫하고 있다. 당을 확실히 장악했던 이회창 전 총재 시절에도 외부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기동력은 부족했다. 최병렬(崔秉烈) 전 대표는 탄핵 파동으로 물러났고 박 대표는 당 장악에 어려움을 겪어 퇴진 요구에 휘말려 있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최 전 대표와 박 대표는 이회창식 리더십의 진공 상태를 자신들의 리더십으로 채우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 당직자는 “박 대표는 당의 변화를 주도하면서도 당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데, 그러기엔 당내 사정이 너무 복잡하다”고 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