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 대변인의 용기를 기대하며-
여섯 살 땐가. 일곱 살 땐가. 나는 어머니 품안에서 울고 있었다.
잘못해 매 맞고 운다는 오해는 마시라.
너무 슬퍼서 운 것이다. 심청이가 너무 가엾어서 운 것이다.
어머니는 옛날 얘기를 자주 해 주셨고 아주 잘 하셨다.
나는 ‘장화홍련’ ‘콩쥐팥쥐’ ‘흥부와 놀부’등 많은 옛날 얘기를 들었고 어머니 얘기는 아무리 들어도 물리지가 않았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장화홍련도 무척 슬픈 얘긴데 그 기억은 남은 게 별로 없고 유독 지금도 선명한 것은 심청의 슬픈 얘기와 하염없이 어머니 품에서 울던 내 모습이다.
왜일까. 효녀 심청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되었기 때문일까.
그 것도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여기서 고백할 것은 바로 우리 어머님의 성이 청송 심씨라는 사실이다.
어머님이 효녀 심청이 얘기를 하실 때는 꼭 어머님과 같은 심씨라는 것을 말씀하셨고 심청이와 심봉사(심학규)가 마치 어머님의 조상인 듯 그럴싸하게 각색하셨으며 그래서 내게는 더욱 감동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어머님은 아마 교육적으로도 심청의 얘기를 높게 평가하셨는지 모른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백석에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의 얘기를 들려주시며 내게 지극한 효성을 기대 하셨을지 모르나 죄송스럽게도 나는 감히 효자라는 말을 입에 담기조차 송구스럽다.
그러나 나는 심청의 얘기를 들으며 자기를 버리는 희생이 얼마나 귀한 것임을 일찍이 배운 것이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해 보자.
얼마 전 제천에서 있었던 ‘한 나라 당’의 의원 연찬회는 정치권의 관심이 쏠린 행사였는데 박근혜 대표로서는 영 기분이 안 좋은 행사였을 게 분명하다.
박 대표는 이번 연찬회에서 작심을 하고 ‘한 나라 당’의 이름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할 생각이었으나 야속하게도 이른바 당의 중진들을 비롯한 많은 의원들이 당의 이름을 바꾸려는 박 대표의 깊고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해서 결국 당명을 바꾸는 높은 뜻을 접는 불편을 감내 할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근본적인 당의 개혁 없이 이름만 바꾼들 그야말로 호박에 줄 그어 놓고 수박이라고 우기는 억지 이상의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는 야박한 해석들이 있었던 모양인데 어찌됐던 박 대료로서는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이로우면 간이라도 빼줄 듯 알랑거리다가도 손해다 싶으면 똥 친 막대 취급을 하는 것이 세상인심인데 특히 정치판을 더욱 자심해서 적도 없고 동지도 없는 그야말로 아사리 판이라 박 대표가 굳이 섭섭하게 생각할 것도 없을 법 한데 그래도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 야속한 것은 여전히 야속한 것이다.
다만 어느 누구 하나 당당하게 나서서 박 대표를 두둔하고 감싸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진짜 ‘한 나라 당’ 의원들이 해도 너무 한다는 말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바로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충신이요. 측근이며 심청이다.
확실히 박 대표에게도 충신은 있었다. 몸을 던지는 측근은 있었다.
바로 전여옥 대변인이다.
이미 보도를 통해서 전여옥 대변인이 얼마나 통렬하게 당의 중진들을 비판했는지는 모두 알고 있겠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는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고 당한 의원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쥐 똥 씹은 상이 됐을 것이다.
전여옥 대변인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통렬한 비판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이 의리 없는 인간들아! 좀 들어봐라!” 였다. 전여옥 대변인이 비판의 글을 쓰면서 지었을 그 특유의 모멸의 찬 표정이 떠오른다.
.... “탄핵의 폐허 속에서 박 대표의 치마꼬리를 붙잡고 살려 달라 애걸을 해 놓고 이제 과거사 폭풍이 몰려오니 피할 생각부터 하고 있다.
이제 와서 박 대표 혼자 치마폭에 얼굴 폭 파 묻고 심청이 처럼 뛰어 내리라는 건 뭐냐. 이 은혜 모르는 뺑덕어멈들아”
백번 옳은 말이다. 전여옥 다운 체증이 싹 가시는 시원한 비판이다.
전여옥 대변인이 좋다 싫다 따질 것 없이 정말 통쾌한 한방이었다.
사내자식인 나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한 나라 당’이 전멸을 한다고 예고하던 작년 4.15 총선 때 박 대표의 치마꼬리를 붙들고 졸졸 따라 다니며 온갖 아양을 떨던 지금의 ‘한 나라 당’의원들 모습이 눈앞에 선히 떠오르고 아부는 이렇게 해야 확실하게 금메달을 따는 것이라는 모범답안을 보여 주었다.
만약에 아니라고 한다면 그 당시의 자료화면을 전여옥 대변인은 틀림없이 공개할 것이고 그 때 ‘한 나라 당’ 의원들의 표정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 싶다.
전여옥 대변인은 자타가 인정하는 대단한 분이다.
일찍이 대학시절부터 언론에 관심이 깊어 학생기자를 했고 KBS의 기자를 하면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일본 특파원을 했다.
표절을 했느니 어쩌니 하고 말썽이 생겨 지금 법정소송으로 까지 비화됐으나 그것은 나중에 법이 밝힐 문제고 전여옥 대변인이 쓴 “일본은 없다”는 누가 뭐래도 대박이었다.
대변인으로서의 그의 입은 광대무변한 황야를 달리는 맹수처럼 안하무인이고 거칠 것이 없다.
국사를 논의한 중요한 만남을 단지 남자와 여자라는 이유로 한방 날린 논평은 중년 남녀가 호텔에서 두 시간씩 뭘 했느냐는 묘한 뉴앙스의 말씀이다.
그런가 하면 대통령이 외국에 나갔을 때 왈.
“대통령이 국내에 있으면 늘 시끄러운데 그래도 밖에 나가면 나라가 조용하니 되도록 오래 나가 있었으면 좋겠다”
해석에 따라서는 엄청난 논란을 불러 올수 있는 발언을 한 것도 역시 전여옥 대변인이 아니면 낼 수 없는 용기 아닌 용기다.
아무리 정치인이라 해도 좋고 싫은 것은 분명히 있기 마련이고 언론매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닌데 전여옥 대변인의 용기는 좋고 싫은 것이 너무나 분명해 일부인터넷 매체로부터 항의를 받을 정도로 선을 분명히 긋고 산다.
박근혜 대표를 비판한 당의 중진들을 비롯해 개혁적 의원들에게까지 날린 통렬한 강펀치도 전여옥 대변인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박근혜 대표의 어려운 처지를 온 몸을 던져 돌파하는 전여옥 대변인의 용기는 충성을 이해득실의 무게로 계산하는 정치판에서 가히 살신성인의 경지가 아닐까.
그렇다면 전여옥 대변인과 효녀 심청이는 무슨 관계인가.
박근혜 대표에 대한 전여옥 대변인의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충성심은 이른바 극 보수라고 딱지가 붙은 인사들에게는 안아주고 싶을 정도의 여걸 장부가 분명하고 이 나라 여성지도자의 표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세상일이란 긍정 바로 곁에 부정이 있기 마련이고 양지 넘어 음지도 있기 마련이다.
애써 벌어 놓은 것도 전여옥 대변인의 한 마디로 다 날라 가 버린다는 ‘한 나라 당’ 내부의 얘기야 남 씹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몫이라 치더라도 ‘한 나라 당’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전여옥 대변인의 장기적 유임을 적극적으로 반기고 있는 것은 전여옥 대변인의 일상이 부정적으로 투영되고 그것이 바로 ‘한 나라 당’으로는 상당한 손해가 될 것이라는 여론분석에 기인한다면 전여옥 대변인이나 ‘한 나라 당’으로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명석한 전여옥 대변인이 그런 분석이 있음을 왜 모르겠는가.
매사에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전여옥 대변인이 결단코 대변인 자리 같은 것에 연연할 사람이 아님을 세상이 다 안다. 부담 없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에 매달릴 사람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더 없이 소중한 박근혜 대표와 당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몸을 바다에 던질 심청이의 비장한 각오와 준비가 되어 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앞 못 보는 아버지에게 광명을 주기 위해 공양미 삼 백석에 귀한 목숨을 바다에 던진 효녀 심청과 ‘한 나라 당’이 인정하듯 오늘의 박근혜 대표와 ‘한 나라 당’으로는 집권의 싹이 노랗다는 세론을 단번에 쓰러버리는 전여옥 대변인의 눈물겨운 살신성인.
“박 대표님. 심 청 이는 내가 할래요.”
후세 어느 누군가 전여옥 대변인의 희생을 효녀 심청이의 얘기처럼 감동적으로 자식에게 들려 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2005년 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