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 가서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서로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이, 조 양(兩) 박사의 태도는 본을 받아야 할 일.’
1960년 1월 28일 민주당 대통령후보 조병옥(趙炳玉) 박사가 신병 치료차 미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을 예방한 다음날 동아일보는 이렇게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조 박사에게 “여하간 속히 쾌유해 빨리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 박사는 29일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이(승만) 박사도 건강해 연소자인 나와 씨름을 하기 바란다”고 화답했다. 당시 조 박사는 66세, 이 대통령은 85세였다. 두 정치 거목 사이를 오간 훈훈한 덕담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2월 2일 정부와 자유당은 ‘4대 대통령 선거를 3월 15일 조기 실시하겠다’고 결정했다. 민주당은 ‘야당 대통령후보가 몸져누워 있는데, 통상 5월에 실시됐던 대선을 2개월이나 앞당기는 것은 정치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비난했다.
같은 날 자유당 부통령 후보인 이기붕(李起鵬) 국회의장은 의사당에서 야당 의원들의 야유를 받았다. 이 의장이 임시국회 개회사에서 “조병옥 의원이 하루바삐 쾌유해 선거에 지장이 없기를 국민과 더불어 기원한다”고 말하자 민주당 의석에서 “그러면 5월에 선거를 하는 게 어때”라고 야유했다. 민주당 윤제술(尹濟述) 의원은 “적이라도 병들면 약을 주고, 배고프면 양식까지 주면서 싸우는 것이 화랑도 정신이요, 기사도”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에 입원해 있던 조 박사도 이 대통령에게 “나에게 공정한 기회를 달라”는 전문을 보냈으나 모든 것이 허사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월 15일 조 박사는 심장마비로 갑자기 숨졌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유일한 경쟁자가 사라진 것. 대통령 후보 등록이 13일로 마감됐기 때문에 민주당은 새 후보를 낼 수도 없었다.
동아일보 2월 16일자 사설은 ‘자유당이 반대당에서 입후보할 수 있는 기회를 새로 제공하는 것이 민주적 페어플레이 정신’이라고 촉구했다. 자유당은 이마저도 외면했다.
이 대통령은 3·15부정선거를 통해 4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한 달여 뒤 4·19혁명으로 모든 걸 잃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