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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라이트, 침묵에서 행동으로]왜 움직이기 시작했나

입력 | 2004-11-07 18:35:00


합리적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범(汎)보수-중도 그룹이 적극적으로 세력화에 나서게 된 밑바탕에는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이 공통적으로 깔려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수구적 보수이념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뉴 라이트 그룹의 등장 배경=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과 각종 경제정책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훼손하고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기존 보수층의 퇴행적 행태와 성격에 대한 자성도 뉴 라이트 그룹이 태동한 요인이다.

특히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나타나는 현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이들의 움직임에 힘을 보태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율은 30%선에 고정된 지 오래됐다.


김형준(金亨俊)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뉴 라이트 그룹의 동력을 ‘침묵하던 보수층’의 정치적 관심 증대에서 찾았다. 2002년 대통령선거 이후 보수층이 ‘이대로 가면 사회 주도세력이 완전히 바뀌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을 공유하면서 적극적인 정치적 ‘발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를 진보세력의 정치적 주도권 확보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했다. 양 진영 중 어느 한쪽이 강해지면 자연스럽게 다른 쪽의 반발과 대응을 불러온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뉴 라이트 그룹의 지향=새로운 움직임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꼴통 보수’와 ‘꼴통 진보’의 양극단을 배제하고 보수적 관점에서 ‘합리적 중도’의 층을 두껍게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김일영(金一榮) 성균관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이를 ‘잃어버린 담론의 장(場)을 다시 찾기 위한 몸짓’이라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오랜 기간 보수층이 행동하지 않고 무임승차해 온 결과 정권을 내놓은 데 이어 2세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담론의 장에서도 주도권을 잃게 됐다”며 “중도 보수세력의 새로운 움직임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자유주의 연대의 한 소장 학자(40·역사학)는 “현 집권층은 투쟁해서 성취하는 능력은 우수하지만, 국가를 통합하고 관리하는 능력은 부족하다”며 “이를 바로잡고 현대사를 균형 있게 조망하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늦은 나이에 ‘돈 버는 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로 ‘의식화’된 후 사고가 그 수준에서 고착돼 버렸다. 현 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386’들도 대한민국의 정통성 부정과 친북 반미적 사고를 대학시절 그대로 갖고 있지 않나 우려가 된다”며 현 정권에 대한 이념적 대항 성격을 숨기지 않았다.

신지호(申志鎬)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는 현 정권의 성향을 나만이 옳다는 식의 이분법에 기초해 독선과 편협성에 갇힌 ‘비(非)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규정한다. 신 교수는 시장주도형 경제와 자유주의, 다원주의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동의하면서도 현 정권이 추진하는 개혁의 방법론과 방향에 대한 이의제기라는 해석도 있다.

송호근(宋虎根)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반적으로 사회가 과거보다는 진보 쪽으로 옮아가고 있는데, 급진적이고 단절적인 변화를 꾀하려는 방법론 때문에 진보의 가치조차 훼손당하고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진보세력이 국민의 뜻을 점검하지 않고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범보수 쪽이 빼앗긴 본래의 보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했다.

▽기존 보수와의 차별성=새로운 사회현상이랄 수 있는 뉴 라이트의 출발점은 ‘기존 보수층에서 미래를 발견할 수 없다’는 자성이다. 따라서 한나라당 등 기존 정치권과도 뚜렷이 선을 긋고 있다.

김일영 교수는 이에 대해 기존의 보수세력보다 상대적으로 덜 행동적이지만 생각은 더 합리적이고 젊은 지식층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20대 초반의 보수 성향을 들어 ‘나이 든 보수’와는 다른 합리적 보수층이 두껍게 형성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도종(金道鍾)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존 보수층이 도덕성의 몰락과 함께 기득권층으로 내몰리는 바람에 보수의 생각을 갖고 있어도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사회 분위기에 변화가 나타나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뉴 라이트’의 이념적 좌표는▼

‘뉴 라이트’는 대체적으로 ‘정치적 자유주의, 경제적 시장주의, 외교적 국제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뉴 라이트 그룹이 현 정부의 정책 노선을 ‘급진적’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집약되는 헌법 가치와 충돌하고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뉴 라이트는 현 정부의 정책 노선에 반대하는 대립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뉴 라이트 그룹은 경제 분야에선 ‘작은 정부, 큰 시장’ 원칙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시장을 철저히 중시한다.

이들이 현 정부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추진 중인 재정지출 확대나 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 방침에 반대하는 대신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의 투자 심리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움직임은 1980년대에 등장해 미국 ‘레이거노믹스’의 정책 기조를 이룬 ‘뉴 라이트’ 신보수주의 운동과 맥이 닿아 있다. 이른바 한국판(版) ‘뉴 라이트’인 셈이다.

그러나 본보는 논의 끝에 이에 대해선 신보수주의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자칫 이 용어가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핵심 그룹인 ‘네오콘(Neo Con·신보수주의자)’을 연상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의 네오콘은 이념적으로 강경 보수 성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한국 내 ‘뉴 라이트’ 그룹은 중도-보수 성향의 합리적 비판의식을 갖고 있는 인사들을 망라하고 있다.

뉴 라이트 그룹은 현 정부의 이념적 좌표에 대해 ‘좌(左)편향’이라고 비판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진보적 학계 인사들의 주장을 ‘자기비하적’ 역사관이라고 비판하고,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공세를 주문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인식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

그러나 뉴 라이트 그룹이 단일 대오로 뭉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현 정부에 각을 세운 뉴 라이트 운동에 기존 보수 진영까지 가세하고 있어 이념적 지형이 혼란스러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보수서 중도까지… 학계-법조계-시민단체 가세▼

‘뉴 라이트’ 운동엔 기존 보수진영 이외에 중도 성향 인사들까지 대거 가세하고 있다.

우선 학계와 시민단체 진영에선 중도 성향 교수들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하영선(河英善)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를 비롯한 중도 성향의 외교 안보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공동체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안민포럼’(회장 장오현·張五鉉 동국대 교수)도 올해 초부터 청소년을 상대로 균형 잡힌 사회관을 강조하는 강좌를 실시했다. 이들은 이 작업을 책으로 펴내고 본격적인 ‘이론투쟁’에 나설 태세다.

운동권에서 전향한 386세대 소장파 학자들도 현 집권 386세대를 겨냥해 ‘사이비 좌파’ 논쟁을 주도하고 있다.

경제계에선 현 정부의 경제정책 노선을 둘러싼 공세가 뜨겁다. 한국경제학자들의 주류적 연구모임인 한국경제학회가 8월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안국신(安國臣) 중앙대 교수는 “현 정부가 ‘좌파의 덫’에 걸려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차기 학회장으로 내정된 이재웅(李在雄) 성균관대 교수도 정부의 경제 노선을 비판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한나라당에 박세일(朴世逸) 의원 등 자유주의적 성향의 교수 출신이 다수 포진했다. 열린우리당에서도 중도 성향 의원들이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안개모·회장 유재건·柳在乾 의원)을 1일 결성하고 목소리를 높일 채비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