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고려대 한국학관에서 열린 세미나 ‘김우창과 한국 인문학’에 참석한 김우창 교수. 그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저건 내 얼굴이 아니다’라고 했던 성 요한의 얘기가 떠오른다”며 “저자들이 나쁜 점은 못 보고 좋은 점만 말해줘 내 얘기같지 않다”고 말했다.-강병기기자
“제가 걸어 온 길은 지렁이나 달팽이가 옮겨 간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런 길에서도 시사점을 주는 좋은 생각이 있다고 본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10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한국학관의 한 강의실에서 열린 ‘김우창과 한국 인문학’ 세미나에서 자신의 학문세계에 애정과 경의를 표한 많은 학자들에게 이렇게 답했다.
이날 모임은 지난해 대학에서 정년퇴임한 그의 학문세계를 조명한 2권의 책 출간 기념 토론회였다. 2권의 책은 중진학자 4명과 김 교수의 대담을 엮은 ‘행동과 사유-김우창과의 대화’, 그리고 문학 철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쓴 김우창론을 모은 ‘사유의 공간-김우창에 이르는 여러 갈래의 길’(생각의 나무)이다. 그의 직계 제자들뿐 아니라 전공이 다른 동료 후배 학자들이 바친 헌사라는 점에서 이 책들의 출간은 이례적이다.
이날 토론회에도 각계 원로와 중진 학자들이 모여들었다. 김종길 고려대 명예교수, 유종호 연세대 석좌교수, 장회익 녹색대 총장, 최장집 고려대 정외과 교수,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여건종 숙명여대 영문과 교수, 황종연 동국대 국문과 교수, 문광훈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문학평론가 이경호씨 등이었다.
대표발제자 중 한 사람인 권혁범 대전대 정외과 교수는 “1980년대 ‘정치적 회색주의’로 비판받았던 김우창의 정치철학은 이후 (역사를 통해 입증된) ‘오류와 망상’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줬다”고 말했다.
발제가 끝난 뒤 김 교수는 질의응답에 나서 황종연 최장집 윤평중 교수 등의 질문에 답했다. 그는 자신의 학문세계를 포괄하는 개념인 ‘심미적 이성’이 서구 전통에 기댄 바 크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는 조선시대 정치 관료를 뽑는 과거시험을 시(詩)로 치른 한국적 전통에도 맥이 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일제강점기에 진행된 근대화나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에서도 특유의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역사는 과거를 대상으로 한 사실의 세계이지만 우리의 세계는 현재와 미래를 대상으로 한 선택의 세계”라면서 “당대에는 당연한 윤리적 선택으로서 식민지상황과 독재 통치를 비판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 통치의 결과로서 발생한 근대화라는 성과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