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이니 바싹 말라 갈라진 논바닥 같은 한국경제에 부처님 자비가 장대비처럼 쏟아지길 기원해 본다.
매주 일요일 오전 9∼11시 이화여대 부속교회 세미나실에는 매우 진지한 분위기의 강의가 열린다. 30여년째다. 85세의 김흥호 목사가 서양철학은 물론 유(儒) 불(佛) 선(仙)을 넘나드는 동양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권위 있는 불교학자이기도 한 김 목사가 원각경(圓覺經)에 대해 해설한 강의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99년 12월 5일에 이뤄진 원각경 강의 내용을 요약해 보자.
▼어려운 민생’ 깨닫지 못하는 지도층▼
“원각경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참회(懺悔)다. 세조는 단종을 죽이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탑골공원 터에 원각사를 세웠다. 우리가 뉘우치고 열심히 노력하면 모두 성불(成佛)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창조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원각(圓覺)의 세계, 즉 이상세계가 이뤄진다.”
원각경의 심오한 진리를 깨닫기가 쉽지 않으련만 이해하는 범위 안에서 한국의 현실을 분석해 보겠다.
권좌에 앉은 사람들이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취업난, 신용불량 악순환, 얼어붙은 내수시장 등으로 민생이 갈수록 도탄에 빠져 가는데 이를 해결해야 할 지도층은 상황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듯하다. 탈출구를 찾고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도 자기 눈앞의 입지만을 챙기는 것으로 비친다.
노무현 대통령부터 그렇다. 법치주의 존중 의무를 강조한 헌법재판소의 지적에 대해 제대로 참회하지 않고 지엽적으로만 사과하는 데 그쳤다. 직무 복귀 이후의 공식 활동을 보니 민생보다는 정치력 확장을 위한 세(勢) 구축에 더 골몰하는 것 같다.
여권 지도부가 장관자리 다툼을 벌이며 차기 대권 경력 준비에 매달리는 모양새도 자기반성과는 거리가 멀다. 야권이 반대하는 인물을 차기 총리로 내세우는 것도 불교 가르침의 하나인 상생(相生)과는 어긋난다.
김 목사의 강의 내용대로 한국이 발전하려면 창조하는 사람들이 보람을 느끼는 세상이 돼야 한다. 참다운 ‘기업가 정신’을 가진 기업인은 이런 역할을 맡을 적임자 아니겠는가. 기업은 생산의 주역이자 국민 대다수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조직이다. 나라 전체로는 기업은 국부(國富)를 창출하는 원천이다.
물론 기업인 가운데서도 참회해야 할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정경유착 버릇을 못 버리는 데다 하청업체를 쥐어짜고 종업원을 닦달하는 부류가 적지 않다. 그렇다 해서 기업인 전체를 모리배 집단으로 몰아쳐서는 곤란하다.
기업의 풀뿌리인 중소기업들은 상당수가 요즘 하루하루를 버티기가 어렵다. 원자재난, 높은 인건비, 자금난, 판로 축소 등 갖가지 이유로 생사기로에 선 업체들이 폭증하고 있다. 더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기업인들의 사업 의욕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장을 해외로 옮기거나 아예 문을 닫는 게 낫다”는 주위의 권유에 귀가 자꾸 솔깃해진다. 혁신 의지와 역량을 갖춘 ‘참기업인’들은 정부의 직접 지원 따위를 원치 않는다. 경영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온갖 성가신 규제를 풀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창조하는 사람들’ 보람 느끼게 해야▼
대기업은 어떤가. 일부 수출 호황 업체를 빼곤 불안한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개혁’이란 ‘쿨(cool)’한 간판을 내건 ‘마녀 사냥’이 언제 벌어질지 몰라 투자 결단을 내리기가 망설여진다. 분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가는 가운데 사회공헌기금이라는 해괴한 준조세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대기업 대표들은 대통령과 만나 투자활성화를 다짐했지만 억지춘향으로 밝힌 것은 아닌지….
힘 있는 사람은 과욕을 버리고 참회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 전체에 창의성이 생기고 한국경제는 살아난다. 나무관세음보살, 성불하십시다.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