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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이 천사]위안부 할머니 12명께 드리는 ‘어버이날 편지’

입력 | 2004-05-07 18:31:00

‘하남 양지청소년봉사회’가 최근 ‘나눔의 집’에서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생신잔치를 마련해줬다.-사진제공 나눔의 집


8일은 제32회 어버이날.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 사는 할머니 12명은 이날이 무척 싫다. 이들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출신으로 가족에게서조차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곳 할머니들은 이 같은 응어리 때문인지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는다. 하지만 김선미씨(43·주부·경기 성남시)와 경기 하남시 ‘양지청소년봉사회’ 청소년들에게는 다르다. 할머니들은 이들을 친딸이나 친손자처럼 대한다.

▼주부 김선미씨-양지청소년 봉사회▼

김씨는 2001년 우연히 TV에서 할머니들을 본 순간 돌아가신 친할머니를 떠올리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눔의 집을 무작정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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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은 김씨를 차갑게 대했다. 하지만 김씨는 자주 할머니들을 찾았다. 어느 날 할머니들은 목욕하는 것을 돕던 김씨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그날 이후 할머니들은 김씨를 “선미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김씨는 올해 어버이날을 할머니들과 함께 보내기로 했다. 시댁과 친정 부모가 계신 김씨에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양가 부모들은 “우린 9일에 만나면 되니 할머니들에게 잘해 드려라”고 김씨를 격려했다.

“사람들은 저보고 ‘열심히 봉사한다’고 말하지만 봉사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어요. 오히려 할머니들을 뵐 때마다 제가 더 많은 걸 받는걸요.”

가족과 친지로 이뤄진 ‘양지청소년봉사회’ 회원들은 이곳 할머니들의 또 다른 가족이다. 도시락 가게를 운영하는 장승환(53) 유은자씨(50·여) 부부와 청소년 1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장씨는 “2002년 처음 전화했을 때 할머니들이 ‘한두 번 오고 말 거면 오지 말라’며 차갑게 말씀하시기에 ‘일단 한번 두고 보시라’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2번째 방문했을 때도 할머니들의 마음을 여는 것은 녹록하지 않았다. 중학 3년생∼고교 3년생인 청소년들의 발랄함이 발휘된 것은 이때부터. 할머니들은 ‘애교 작전’을 짐짓 외면했지만 이들이 3번째 찾았을 땐 준비해간 호박죽을 다 들었다.

이들은 한도순 할머니(84)가 “평생 처음 생일상다운 생일상을 받아봤다”며 눈물을 흘린 이후 할머니들 생신만큼은 꼭 챙기게 됐다.

박재홍군(19·고교 3년생)은 “앞으로 결혼해서 할머니들께 손자를 안겨드릴 때까지 건강하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람 사이의 인연과 정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가꾸고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박군의 말이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