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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장하준/‘스위스 대타협’에서 배운다

입력 | 2004-04-20 18:43:00


스위스에 간 한 외국인이 만나는 사람마다 대통령이 누구냐고 매번 물었지만 하나같이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그러다가 점잖아 보이는 한 노신사에게 물어 보았더니, 그 노신사는 “현 대통령은 모르지만 전임 대통령은 안다”고 했다. 그거라도 어디냐 싶어 알려달라고 했더니 노신사는 “접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실제 스위스 국민 중에는 대통령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스위스의 행정부는 7인의 장관으로 구성된 연방평의회(Federal Council)인데, 이들 7인이 1년씩 돌아가며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매년 바뀐다는 것이 큰 이유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정치가 워낙 안정돼 있어 국민이 정치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勞使큰 양보로 정치안정 이뤄 ▼

그러면 스위스의 정치는 왜 이렇게 안정된 것일까. 국민이 천성적으로 타협적이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스위스도 20세기 초까지는 노사갈등으로 고생하던 나라다. 스위스의 정치 안정은 이해가 상충하는 여러 집단이 서로 큰 양보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스위스는 산업화 과정에서 뒤진 농업을 극도로 보호한다. 강력하기로 소문난 유럽연합(EU)의 농업보호가 부족하다고 EU에 가입도 안 하는 나라다. 국민이 세계 최고 수준의 농산물 가격을 감수하기 때문에 농촌이 유지된다. 노사관계도 평화적인데, 이것도 노사간에 진정한 양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1881년 세계 두 번째로 공공 산재보험을 도입하는 등 일찍부터 복지국가를 만들었고, 1930년대 말부터는 노조가 강제조정을 통한 파업권 제한을 받아들이는 것을 대가로 자본가는 사회정책 수립에 대한 노조의 발언권을 인정했다.

스웨덴도 1920년대까지는 파업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을 정도로 노사갈등이 심했지만 1938년 노사 대타협 이후 세계에서 파업이 가장 적은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 골자는 노조가 차등주식제도를 비롯한 기존 자본가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자본가들은 세금을 더 많이 내 복지국가를 강화하고 투자결정 때 노조와 협의하는 것이었다. 네덜란드 벨기에 노르웨이 핀란드 등도 스웨덴과 유사한 대타협을 해 사회평화를 구축하고 산업화에 성공했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대타협이 없이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힘든 단계에 들어섰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대타협의 내용은 무엇일까.

우선 복지의 강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교육, 보건 등에 대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지출은 선진국의 절반 정도 수준이며, 후진국을 포함해도 국제 평균 이하다.

복지국가의 강화를 위해서는 고소득층이 세금을 더 내는 것이 필요하다. 세금이 높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 우리나라의 담세율(중앙정부 기준)은 국민소득의 20% 내외로, 선진국의 30∼40%는 물론이고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3분의 1도 안 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코스타리카 등의 23∼24%보다 낮다.

기업은 노동자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경영에 반영해야 한다. 특히 국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한 대기업은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사회적 감시를 받아들여야 한다. 노동자도 무조건적 투쟁을 지양하고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한다. 또 ‘재벌정책’에 있어 발상을 전환해 정부가 기업의 경영권을 안정시켜 주고 부채비율이나 사업다각화에 관한 규제를 완화하며 국내자본에 대한 각종 역차별을 없애야 한다.

▼재벌-노동정책 ‘발상의 전환’을 ▼

농업개방에 대한 농민의 저항도 ‘집단이기주의’로만 몰아붙이기보다는 개방으로 이익을 보는 다수가 세금을 더 내 농민의 소득을 보전해 주고 농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농민도 점진적 개방을 받아들여야 한다.

17대 총선을 계기로 우리 정치는 이제 새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진정한 ‘상생의 정치’가 이루어지려면 ‘사이좋게 지내자’는 구호만으로는 부족하다. 갈등하는 집단간에 진정한 양보에 기초한 대타협을 끌어내야 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