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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손 스웨덴 총리 “고용훈련 투자로 파업 줄였다”

입력 | 2004-03-07 18:51:00


《9일 방한을 앞둔 예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사진)는 “정부는 친(親)기업 환경을 조성하고 기업은 장기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페르손 총리는 한국에 앞서 일본 방문길에 나서기 직전인 5일 본보와의 단독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2001년 5월 외국정부 수반으로서는 처음으로 유럽연합(EU) 대표부를 이끌고 남북한을 동시에 방문했다. 스웨덴은 인구 900만명에 불과하지만 에릭슨, 볼보, 사브, ABB 등 세계적 기업을 보유하고 있어 강소국(强小國)으로 불린다. 스웨덴 모델은 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 등 재계 인사들이 ‘주식회사 한국’의 미래성장 모델로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관심을 끈다. 이번 인터뷰는 △스웨덴 모델과 기업-정부 관계 △차등(差等) 의결권으로 대표되는 스웨덴의 독특한 기업지배구조 △평화적 노사관계와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의 원인 등이 주요 쟁점이었다. 페르손 총리는 이번 아시아 방문기간 중 북한 방문을 추진했으나 마지막 순간 무산되었다고 스웨덴 외무부는 5일 밝혔다.》

―1970년대까지 세계 각국은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80년대에는 일본, 90년대에는 미국이 최상의 모델로 부각됐는데….

“스웨덴 모델은 급속한 구조 변화, 유연성, 산업 기술의 혁신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인플레이션에 대응한 경제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과도한 연금 등 과거 단점들은 보완됐다. 지난 10년간 스웨덴의 성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을 훨씬 웃돌았다. 실업률도 4%로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스웨덴 모델은 세계화시대에도 유효하다는 말인가?

“세계화는 그간 계속되어 왔다. 최근 들어 좀 더 강조되고 속도가 빨라졌다. 복지국가를 처음 세웠던 30년대와 마찬가지로 국제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교육 투자를 늘리고 평생교육을 강화해 국민이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갖추도록 한다. 생명공학과 같은 세계 첨단 과학기술 산업을 선도함으로써 스웨덴 모델은 변화에 대응하는 유연한 체제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제조업의 평균 생산성 증가율은 미국을 앞서고 있다.”

―스웨덴의 기업-정부 관계는 어떠한가?

“좋다. 더욱 나아지기를 희망한다. 기업과 정부의 결정은 국가 발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양자간 관계는 대단히 중요하다. 기업과 정부는 사회와 경제를 위해 다른 역할을 하고,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의견 불일치가 나타난다. 상호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정부는 기업을 북돋워야 하고 기업이 잘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 또 기업은 바로 다음 분기(分期)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장기적 안목을 갖고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믿는다.”

―10대 기업의 매출액이 국내총생산의 65%를 차지할 만큼 스웨덴의 경제력은 집중돼 있다. 특히 발렌베리 가문이 지배하는 기업이 스웨덴 주가 총액의 40% 이상을 점하고 있지만 스웨덴 국민은 발렌베리 가문에 호의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던 경험이 있다.

“대기업 오너들이 국민과 친밀한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그들이 기업의 경쟁력 확보에 충실하고 이를 위해 투자하는 것을 보여줄 때 가능하다. 또 역할의 중요성과 관계없이 종업원을 존중하는 것도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의 가장 중요한 산업을 발전시키고 자금조달 기능을 수행했다.”

―스웨덴에는 차등 의결권제도가 존재한다. 통신 산업의 강자인 에릭슨의 경우 심지어 의결권이 표당 1000배나 차이가 난다. 그 이유는….

“미국에서도 많은 상장기업들이 차등의결권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기업에 대해 장기적 이해를 가진 오너가 있는 게 중요하다. 나라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장기적 발전을 도모하는 오너가 기업이 급속히 성장하는 국면에서도 지배권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이 제도의 목적이다. 스웨덴은 외국기업에 개방적이다. 지난 10년간 많은 외국기업들이 스웨덴 기업을 인수했다. 볼보나 사브의 자동차 부문도 미국 기업들에 넘어갔다.”

―스웨덴에서 파업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비결은 무엇인가?

“스웨덴 모델 덕분이다. 전통적으로 스웨덴 노동자와 노조는 구조적 변화, 새로운 기술 도입, 개방을 지지해 왔다. 해외 언론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생산 과정을 합리화하고 이에 따라 일자리가 없어지는데 왜 노조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의아해한다. 노조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낡은 기술’이라고 답한다. 스웨덴 노조가 변화를 수용하는 이유는 이들이 재취업을 위한 훈련을 받고, 실직 중에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적인 노사관계를 위한 방안이 있다면….

“기업과 정치인이 피고용자들이 구조적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변화를 통해 얻게 되는 기업과 사회의 이익을 실직한 개인과 가족을 돕는 데 사용해야 한다. 모든 나라에서 기업이 피고용인들의 교육과 훈련에 보다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고 믿는다.”

―스웨덴이 외국인 직접투자를 많이 유치할 수 있는 이유는….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지식기반 경제를 갖추고 있다고 OECD 연구는 밝히고 있다. 우리 경제의 핵심은 노동자의 숙련도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자동차, 첨단 과학기술, 생명 과학 산업 분야가 우수하고 특히 연구개발(R&D) 기능의 경쟁력이 탁월하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발틱 연안 국가, 유럽 시장 진출을 꿈꾸는 기업들은 스웨덴을 진출기지로 삼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방한이 북핵 문제와 관련이 있나?

“스웨덴과 유럽연합(EU)은 6자회담을 통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자적 노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지난 번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남북한 6·15 공동선언을 준수하고 2003년까지 미사일 실험을 중지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김 위원장을 다시 볼 기회가 오면 추가적 논의를 할 수 있기 바란다.”

―한국경제와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국 국민이 보여준 경제적 성과와 민주주의의 진전에 깊은 인상을 받고 있다. 한국은 많은 다른 나라들의 귀감이다. 양국간 우호와 경제협력이 증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용기기자·국제정치경제학박사 ykim@donga.com

▼페르손 스웨덴 총리 주요 약력▼

△1949년 출생(55세)

△외레브로대 수학(사회학 정치학 전공)

△1979∼1984년 국회의원

△1985∼1989년 카트리네홀름 시 의회 집행위원장

△1989∼1996년 교육부, 재무부 장관 등 정부 및 국회 요직 역임

△1996년∼현재 총리(사회민주당 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