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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 지제크, 부시의 이라크戰 명분변화 분석

입력 | 2004-02-12 18:42:00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SS) 대신 프로이트를 먼저 읽어라.”

슬로베니아 출신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슬라보이 지제크 박사는 격월간 국제정세 학술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1, 2월호에 실린 기고문에서 이렇게 제안했다. 극히 역설적인 제안이지만, 최근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논란을 둘러싼 부시 행정부의 태도를 이해하려면 프로이트가 훨씬 유용하다는 것이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 철학과 교수인 지제크 박사는 20여개 언어로 번역된 저서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권위 있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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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제크 박사는 한마디로 지금 부시 행정부가 보이는 행동양태는 프로이트가 말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와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방어기제는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를 가리키는 말.

다시 말하면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전의 명분이 됐던 사담 후세인 정권의 WMD 존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곤경에 처하자 상황을 왜곡하는 방어기제로 탈출구를 마련하려 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제크 박사의 분석은 이렇다.

“친구에게 빌린 물건이 고장 났다고 치자.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당신의 첫 반응은 바로 그 물건을 빌린 적이 없다고 잡아떼는 것이다. 그러나 빌렸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당신은 그 물건을 돌려줄 당시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입장을 바꿔 주장하기 시작한다. 이 주장도 거짓임이 탄로날 경우 마지막 수단은 바로 물건을 빌렸을 당시 이미 고장이 나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지제크 박사는 “그러나 이는 당신이 그 물건을 빌려 고장 낸 장본인이라는 점을 입증할 뿐”이라며 방어기제의 사례에 부시 행정부의 태도를 대입했다.

이라크전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비난에 대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가 가하는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확증이 갈수록 불투명해지자 이번에는 알 카에다와 후세인의 연계성을 언급하는 것 모두 이 같은 방어의 유형들이라는 것이다.

지제크 박사는 그러나 이는 비논리적인 ‘방어기제’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란과 북한 역시 독재자들이 통치하고 있는 ‘악의 축’ 국가이자 ‘위협’인데 굳이 이라크만을 공격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며 “다른 국가에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미국의 믿음, 미국의 헤게모니를 관철시키려는 의지, 그리고 이라크의 석유가 진짜 이유”라고 분석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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