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 직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18층 강당에서 이날 사퇴한 윤영관 장관의 이임사를 듣고 있다. -박주일기자
15일 ‘사표 수리’ 형식을 빌려 전격 경질된 윤영관(尹永寬)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강조해온 ‘자주외교’ 노선의 창안자이다.
그런 윤 전 장관의 중도하차는 쉽게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그런 만큼 외교부 일부 공무원의 대통령 폄훼 발언으로 촉발된 이번 파문의 충격파도 쉽게 가라앉지 않을 분위기다.
건국 이후 대통령이 외교 노선의 비자주성을 문제 삼아 외교부 수장을 문책 경질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노 대통령은 자주외교 노선의 실행 의지를 보다 분명히 함에 따라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기존 외교 노선에도 대전환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우여곡절을 겪어오면서 가까스로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대미 관계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2002년 반미 촛불시위 이후 미국 내에서 고조됐던 한국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 일면서 양국 정부간의 신뢰관계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또한 북한 핵문제를 비롯해 중차대한 현안이 걸려있는 시점에 아직 구호 외에 외교정책으로서의 실체가 분명치 않은 자주를 앞세워 실험적인 외교노선을 추구하는 데 따른 부작용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외교부 북미국장 출신인 송민순(宋旻淳) 경기도 국제관계 자문대사는 “외교란 상대 이익을 존중해야 내 이익도 챙길 수 있는 것”이라며 “‘열린 자주’가 아니라 ‘닫힌 자주’를 하면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으로선 국제 미아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철저하게 국익과 실리를 우선시해야 할 ‘외교’ 문제를 국내 정쟁 차원으로 끌고 가는 것은 곤란하다는 비판론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전문가는 “미 행정부만 보더라도 딕 체니 부통령 같은 강경파도 있지만 콜린 파월 국무장관 같은 온건파도 중용함으로써 철저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며 “상대국을 고려했다면 윤 전 장관을 이런 식으로 경질할 게 아니라 개각 때 다른 장관들과 함께 교체해야 했다”고 말했다.
한편 윤 장관 경질 이후 외교부의 대미라인은 후속 인사 태풍에 휩싸일 전망이다. 일단 김재섭(金在燮) 차관, 위성락(魏聖洛) 북미국장, 폄훼 발언 파문의 당사자인 조현동(趙賢東) 북미3과장 등 대미라인의 주요 간부들이 모두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
후임 장관으로는 반기문(潘基文) 대통령외교보좌관, 김삼훈(金三勳) 주유엔대사, 한덕수(韓悳洙) 전 통상교섭본부장, 최상룡(崔相龍) 전 주일대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미국의 입장을 잘 이해하면서도 조직 장악력이 있어야 하고, 기본적으로 노 대통령의 외교철학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인선기준을 제시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