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사범대가 자녀의 효율적인 교육을 위해 실시한 강의 ‘우리 아이 학교 공부 바로 하기’는 많은 학부모들의 관심을 모았다. 동아일보와 서울대 사범대는 공동으로 교수, 교사들이 학생과 만나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상담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매주 한차례씩 영어, 수학, 과학, 국어 등 4개 과목의 공부법을 소개한다.》
안양 백영고 남조우(南祚祐) 교사, 서울 자양중 2학년 양다빈양(14), 서울 광남고 1학년 권연하(16), 윤나예양(16)은 영어 공부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학생들은 영어 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남조우=환자들은 의사가 약을 처방해 주면 복용법에 따른다. 하지만 학생들은 교사가 가르치는 공부법을 따르기보다는 엉뚱한 방법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많다.
남조우 교사와 양다빈 권연하 윤나예양(왼쪽부터)이 영어 공부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학생들은 평소의 고충을 털어놓고 남 교사에게서 유익한 조언을 들었다. -강병기기자
▽양다빈=듣기가 너무 어렵다. 받아쓰기는 힘들게만 느껴진다.
▽남=안 들리는 내용은 아무리 들어도 안 들린다. 자기 수준에서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내용을 듣는 게 좋다. 이때 안 들리는 부분은 유추해 보자. MP3 플레이어, 미니 카세트 등을 갖고 다니며 등하교 시간에 매일 듣기 1회분을 팝송 듣듯이 하면 된다. 이렇게 3년만 하면 수능 듣기 부분은 거의 만점을 받을 수 있다. 받아쓰기도 좋은 방법이다. 듣기 대화에서 나오는 말을 0.5초 늦게 따라하면 자연스럽게 문장을 익힐 수 있다.
▽권연하=수업 시간에 배우는 영어는 비교적 쉬운데 수능 모의고사나 문제집을 보면 어렵게 느껴져 난감할 때가 많다.
▽남=무조건 문제를 많이 풀기보다 하나를 풀어도 제대로 푸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 틀리는 문제는 반복해서 틀리는 경향이 있다. 개념을 확실히 익히지 못한 부분은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무조건 학원에서 모르는 것을 공부하기보다 혼자서 문제 유형이나 실전감각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 한 문제를 갖고 낑낑거리더라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효과가 오래간다.
▽권=시중에 영어 듣기 교재가 많이 나와 있는데 어떤 걸 선택하는 게 좋은가.
▽남=교육방송(EBS) 교재를 적극 활용하라. 시도교육청 인터넷 사이트에 보면 듣기평가 파일이 올라와 있고 영어 교사들 홈페이지에도 많이 올려져 있는데 그걸 활용하면 좋다.
▽양=독해할 때 문장이 아무리 길어도 주어나 동사를 찾으라고 한다. 그런데 주어 동사 다 찾고 단어 의미도 아는데 해석을 해도 무슨 뜻인지 모를 때가 많다.
▽남=기초 문법이 약하기 때문에 해석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문법은 독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만큼 기초문법을 익혀야 한다. 구구단이 저절로 나오는 것처럼 문법도 머릿속에 녹아 있어 저절로 구조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영어 지문에 사회 정치 등 여러 분야가 나오기 때문에 다양한 책을 읽어 배경 지식이 많아지면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권=7차 교육과정에서는 영어 비중이 높아지고 더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남=12월 4일 치르는 모의고사가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 수가 늘어나기보다는 배점 자체가 높아질 것이다. 지문도 더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은 한 지문에 80∼100 단어가 나오는데 단어 수가 120개 정도까지 늘어날 수 있다. 듣기 대화도 3회 정도에서 5회 정도로 늘어날 것 같다. 긴 문장을 자주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영어 소설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문법 비중이 커질 수 있다. 수능은 정형화된 게 많아 학생들이 답은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데 읽고 해석하라고 하면 더듬거리는 경우가 많다.
▽권=문법책은 어떤 걸 골라서 공부해야 하는가. 유명 문법책을 꼭 봐야 하나.
▽남=얇은 문법책 한 권을 여러 번 보는 것이 좋겠다. 수능은 기출 문제를 모아 정리한 책을 훑어보면 출제 경향이 보이는데 그걸 위주로 공부하면 된다. 문법은 독해를 위한 것이다. 단어 하나를 잘못 쓰면 문맥이 달라지거나 모르면 해석이 안 되는 필수 문법 사항을 잘 챙겨야 한다.
▽양=영어 단어를 외워도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
▽남=어떤 사람들은 종이에 까맣게 쓰면서 외우기도 하고 문맥 속에서 단어를 보고 외우기도 한다. 단어 외우기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사전을 너무 안 본다. 가급적 영영사전이 좋지만 힘들면 영한사전을 봐야 한다. 영영사전은 단어가 쓰이는 상황과 이미지가 녹아 있으므로 가급적 어린 나이부터 보는 게 좋다. 중고교생은 미국 초등학생이 보는 사전을 보면 된다.
▽윤나예=전자사전도 괜찮은가.
▽남=부피나 무게 때문에 전자사전을 원한다면 그것도 좋을 것 같다.
▽윤=영작이 너무 어려운데….
▽남=아주 쉬운 독해책을 찾아서 읽고 해석을 한 뒤 그걸 다시 써 보는 게 좋다. 수능을 위해서라면 교과서에 나오는 영작만 열심히 해도 충분하다.
▽양=말하기 연습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남=말하기는 듣기와도 연관된다. 들은 것을 다 따라할 수는 없지만 내가 말한 것은 다 들을 수 있다. 말하기를 잘하면 듣기도 잘할 수 있다. 테이프를 들으면서 혼자 중얼중얼 따라해 보는 게 좋다. 방학이나 주말을 이용해 학교 공부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회화학원을 다니는 것도 좋다.
영어는 즐겁게 공부해야 한다. 제대로 된 학습 방법으로 공부해서 성적이 조금씩 향상되는 걸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어와 친해질 수 있다. 처음에는 서먹하겠지만 영어 선생님에게 자꾸 물어봐라. 교사는 자신에게 질문하는 학생을 좋아한다. 쉬는 시간에 선생님을 찾아 괴롭히라고 권하고 싶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서울대 사범대 영어교육과 권오량 교수 기고문▼
‘○개월이면 영어를 마스터할 수 있다’ ‘영어는 원어민에게(혹은 본토에서) 배워야 한다’ ‘영어는 암기과목이니 무조건 외워라’….
이런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귀를 솔깃하게 한다. 하지만 대개 이런 말들은 근거가 미약할 뿐만 아니라 반증(反證)이 더 많다.
한국인은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기 때문에 반드시 원어민과 같은 수준을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다.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게 되면 좌절만 하게 될 뿐이다. 하지만 영어를 잘 배우려면 강한 동기가 필요하다. 학생들은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 장래에 영어가 쓰일 일이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학생들은 지적, 정서적 특성에 따라 영어를 배우는 방법이나 효과가 다르다.
사색형은 차분히 생각하면서 하나씩 점검하며 확신을 가질 때 말을 하지만, 충동형은 일단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하는 특성을 지녔다. 좌우 뇌의 발달 정도, 시각 혹은 청각적 효과에 따라 기억이 오래가는지, 내성적인가 외향적인가의 차이, 모험심 자긍심의 차이 등이 모두 학습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자신의 스타일에 적합한 방법을 찾는 것이 좋다.
영어를 제대로 하려면 ‘공부’가 아니라 ‘배우기’를 해야 한다. 영어는 피아노, 수영, 활쏘기 등과 같이 ‘배우는’ 대상이다. 실기로 영어를 배운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책만 읽기보다는 실제 자신의 귀로 듣고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영어 문법은 중요하지만 그 자체로 생각하기보다는 맥락 속에서 쓰임새를 익히도록 해야 한다. 특정 문법을 담은 문장 한두 개를 외워 실제 그 문법구조를 사용하면서 익히는 것이 좋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영어를 하루 이틀에 끝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늘 가까이 하면서 중단 없이 배우는 것이다. 매일 10분씩 하는 것이 열흘에 2시간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영어를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반복은 단순 반복이 아니라 의미 있는 반복이 좋다. 한 문장을 100번 단순 반복하기보다 한 과를 처음부터 끝까지 10번 반복하는 마음으로 듣고 읽으면 차츰 영어가 들리고 눈에 들어오게 된다. 억지로 외우려하지 말고 결과적으로 암기가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서를 보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최소한 3번은 읽어야 한다.
읽을 때는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이 좋다. 물론 나중에 고급 수준이 되면 묵독이 필요하지만 중급까지는 소리 내서 읽음으로써 듣기, 말하기, 읽기를 동시에 할 수 있다.
학생이 영어를 배울 때 가장 중요한 사람은 학교 선생님이다. 학교 선생님을 복도에서건 교무실에서건 자주 붙잡고 질문을 하거나 말을 건네 보자. 또 혼자서 가상의 대화 상대를 그리며 회화연습을 하면 영어 배우기에 성공할 것이다.
학교 밖에서 스스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최대한 영어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좋다. 신문 잡지 소설을 읽거나 영어 테이프를 듣고 영화를 보도록 한다. 회화 클럽에 가입하거나 외국 학생과 e메일을 교환하는 등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외국 학생과의 교신은 동기 유발에 좋다.
학부모가 자녀와 함께 영어를 새롭게 배워보는 것도 좋다. 자녀가 영어를 배우는 데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같이 찾아보면 영어에 대한 자녀의 흥미나 관심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