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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話 국민의 정부]5부③공정위의 불공정한 조사

입력 | 2003-11-19 18:00:00

2001년 6월 20일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당시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왼쪽에서 두번째)이 13개 중앙 언론사에 대한 과징금 처분 건을 상정하고 있다. 공정위는 13개 언론사에 대해 242억원의 과징금 부과 처분을 내렸으나 2003년 1월 스스로 이를 철회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CMP에 언론을 넣으면 되지 않습니까.”(이남기·李南基 공정거래위원장)

“공익성이 강한 언론을 조사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큽니다.”(공정위 간부 A씨)

“그래도 CMP로 조사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검토해 보시오.”(이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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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에 대한 사상 초유의 대규모 세무조사 실시 방침이 발표된 다음날인 2001년 2월 7일. 공정위는 시장질서 확립을 위해 준비한 기획프로젝트인 CMP(Clean Market Project·시장개선대책)의 일환으로 언론에 대해 무가지와 경품제공 등 불공정행위와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를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본래 CMP의 대상은 소비자에게 부당한 피해를 준다는 지적을 받아온 정보통신 학원 의료·제약 예식장·장례업체 건설업 등이었다.

언론사는 당초 CMP에 들어 있지 않았다가 갑자기 ‘끼워넣기’ 식으로 포함된 만큼 언론사를 CMP에 포함시키는 문제를 둘러싸고 공정위 내부에서는 당연히 갈등이 빚어졌다.

공정위 전직 간부 B씨의 설명.

“재벌과 싸워야 하는 공정위가 언론과 적이 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이 간부들의 공감대였다. 언론 문제는 그리 화급한 주제도 아니었다. 이미 신문고시(告示)도 업계 자율에 맡긴다며 신문협회로 넘긴 상황이었다. 공정위가 다시 치고 들어갈 명분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의 의지가 확고했다.”

발표시점도 문제였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의 화두를 꺼내자 국세청이 재빠르게 언론사 세무조사를 발표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공정위 국장을 지낸 C씨의 설명.

“DJ가 연두회견에서 밝힌 언론개혁의 후속조치를 두고 얼마 동안 국세청과 공정위가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었는데 국세청이 먼저 치고 나왔다. 공정위는 혼란스러웠다. 국세청은 ‘모든 기업에 대해 5년마다 세무조사를 하는데 언론도 세무조사를 한 지 5년이 지났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에 비해 공정위는 명분도 마땅치 않은 데다 국세청을 뒤따르는 식이 돼 모양이 좋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공정위도 칼을 빼들지 않을 수 없었다.”

공정위의 언론사에 대한 조사는 신속하게 진행됐다. 공정위는 조사국 직원 30명에 다른 국 직원까지 차출, 총 40명의 인력을 투입해 1차로 동아 조선 중앙 한국 등 4개사에 들이닥쳤다. 당초 2월 12일부터 3월 말까지로 예정했던 조사기간을 보름 연장하면서까지 샅샅이 뒤졌다.

국세청과 공정위가 한꺼번에 언론사 조사를 하다보니 현장에서는 관련서류를 놓고 양측 직원이 다투는 일까지 벌어졌다. 서로 먼저 자료를 보겠다며 경쟁을 벌였던 것이었다.

언론사 가운데서도 정권에 비판적인 동아 조선 중앙 등 3개사가 타깃이었고, 특히 동아일보에 대한 조치가 가장 가혹했다. 통상 기업에 대한 공정위의 부당내부거래 조사결과는 매출액 순서로 과징금이 매겨지는 게 관례. 몸집이 크면 ‘부당내부거래’도 그에 비례해서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관례는 언론사에는 통하지 않았다.

당시 매출액 3위 신문사였던 동아일보에 부과된 과징금은 62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매출액 1위인 조선일보에는 34억원, 중앙일보에는 25억원이 부과됐다. 동아일보에 대한 과징금은 당시 13개 언론사에 부과된 총 과징금 242억원의 4분의 1에 해당된다.

공정위 간부 D씨는 “과징금 규모를 둘러싸고 내부에서 논란이 있었다. 동아일보의 경우 다른 회사보다 적발 건수가 적은 데도 불구하고 액수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통상 기업에 조사를 나가면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조사를 피하려고 하는데 동아일보는 비교적 협조를 잘 해줬다. 과정은 그랬는데, 결과가 최고 과징금으로 나왔다”고 덧붙였다. 동아일보는 ‘별로 문제될 게 없다’는 생각에 선선히 협조해 줬다가 오히려 ‘쇠방망이’를 맞은 꼴이었다.

통상 공정위 과징금 결정은 위원장 부위원장 및 상임·비상임위원들이 모두 참석하는 전원회의에서 결론을 낸다. 언론사에 대한 과징금 부과 결정을 위한 전원회의가 열린 6월 20일 공정위 심판정. 이한억(李漢億) 조사국장이 조사 결과를 읽어 내려갔다. 일종의 구형(求刑)인 셈이다. 언론사측 변호사가 부당성을 주장했으나 메아리는 없었다. 공정위 위원 누구도 이론을 제기하지 않은 상황에서 회의는 일사천리로 종료됐다.

당시 상임위원을 지낸 E씨는 “공정위의 언론사 조사가 정권적 차원에서 진행된 일이란 것을 누구나 아는 상황이었다. 또 위원들의 목숨 줄을 쥔 사람이 위원장이다. 누가 토를 달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공정위의 이 같은 과징금 처분은 부당내부거래 관련 사항에 국한된 것이었다. 무가지와 경품제공 문제 관련 사항은 빠졌다. 이는 조사 착수 당시 무가지와 경품을 불공정거래의 표본처럼 내세웠던 데 배치될 뿐 아니라 CMP 취지에도 맞지 않는 것이었다.

공정위가 이 부분을 뺀 이유는 무엇일까. 공정위 관계자 F씨의 증언.

“막상 조사를 해보니 무가지 등은 당초 ‘표적’으로 했던 동아 조선 중앙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신문이 마찬가지였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무가지나 경품제공이 적발되면 관련 매출액의 2%를 과징금으로 부과하게 돼 있는데, 이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상당수 신문이 경영에 큰 타격을 받게 돼 있었다. 경영이 어려운 몇몇 신문사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일이 확대된 것이다. 결국 이 부분은 신문협회의 자율규제로 넘기기로 했다.”

이에 비해 부당내부거래 문제는 주로 덩치가 큰 메이저 신문에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신문사 전체 문제로 확대되는 부담을 피하면서, 동아 조선 등 비판언론을 선별해 손보는 데는 부당내부거래 문제가 훨씬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과징금 처분을 받은 신문사들은 대부분 이의신청 절차를 거쳐 법원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그 행정심판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올 1월 돌연 과징금 부과를 철회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공정위 전직 핵심간부 G씨는 다음과 설명했다.

“나는 언론사 조사를 이 위원장이 혼자 기획해 실행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다. 그는 언론사 조사과정에서 인간적으로 아주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 뭔가 외부에서 ‘오더(지시)’가 있었을 것이다. 올해 초 언론사 과징금을 철회하는 결단을 내린 것도 그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이뤄졌을 것이다.”

이 위원장이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과징금 철회 결정을 내렸다는 설명과 달리, 일각에서는 철회 결정도 ‘외부 상황’에 의해 이뤄졌을 것이란 견해를 제시하기도 한다. 소송 상황이 공정위측에 결코 유리하지 않게 돌아간 데다 김대중 정부의 핵심관계자들은 DJ의 퇴임을 앞두고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지 매듭지으려 한다는 얘기를 언론쪽에 흘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 위원장은 막판에 무언가에 쫓기듯이 과징금 철회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공정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과징금 철회를 결정한 회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의 증언.

“처음 이 위원장이 과징금 철회 얘기를 꺼냈을 때 대부분의 공정위 간부들은 반대했다. ‘엎질러진 물’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법원에서 이길 승산이 거의 없다고 하소연했다. 당시 이미 한 건은 행정소송에서 공정위가 패한 상태여서 불리하기는 했지만, 공정위 역사상 부과한 과징금을 스스로 철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공정위에 파견 나온 P검사에게 법률 검토를 지시, 과징금을 철회해도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결론을 끌어내는 등 철회의 명분을 쌓았다.”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공정위는 자청해서 과징금 철회 결정을 내림으로써 2001년의 언론사 조사가 그만큼 부당했음을 자인한 셈이 됐다.

공정위의 언론사 조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로 인해 공정위가 입은 상처는 컸다. ‘경제검찰’로 서야 할 공정위가 결국은 정권의 들러리를 서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론이 지금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신문고시 부활 추진 공정위 불신만 자초▼

2001년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불공정행위에 대한 현장조사 외에 99년 폐지됐던 신문고시(告示)의 부활이란 수단을 동원해 신문을 압박했다. 공정위는 언론사 현장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그해 2월 28일 ‘신문업의 불공정거래 행위의 유형 및 기준’(신문고시)을 부활한다고 발표했다.

이전의 신문고시는 주로 무가지와 경품 제한에 국한된 내용이었으나 새로운 신문고시에는 이 외에도 사주에 대한 지원 규제 등 메이저 3대 신문(동아 조선 중앙)을 겨냥한 내용들이 적지 않게 담겨 있었다. 일부 시민단체가 주장하던 ‘언론개혁’의 내용들을 대부분 포함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 공정위 관계자는 “언론개혁 차원에서 공정위가 할 수 있는 사안을 다 예시했다”고 털어놓았다.

공정위가 신문고시 부활을 들고 나온 데 대해 신문협회는 정부의 규제완화 조치에 거스르는 조치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신문협회뿐만 아니었다.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도 공정위의 일방적인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규개위는 공정위가 신문고시를 부활할 만한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새로운 신문고시안(案) 중 무가지 비율을 10% 이내로 제한한 것 등은 신문시장의 현실을 도외시한 행정편의적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규개위의 민간위원으로 활동한 한 인사는 “공정위가 그렇게 서두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 차례 회의를 통해 공정위에 대해 신문고시 부활 절차와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문제를 지적했는데 명분이 약했기 때문인지 공정위측이 상당부분 밀렸다”고 말했다.

진통 끝에 공정위는 무가지 비율 ‘10% 이내’ 규정을 ‘20% 이내’로 조정하는 등 내용을 대폭 수정해 그해 7월 신문고시를 부활시키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반대여론에 밀려 10월에는 신문고시에 앞서 신문협회의 ‘신문공정경쟁규약’을 우선적으로 적용하도록 하는 이행각서(MOU)를 신문협회측과 체결했다. 이에 따라 신문고시 부활 방침은 사실상 철회됐다. 정권의 요구와 여론의 압력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불신만 자초한 셈이다.

▼특별취재팀▼

▽팀 장=이동관 정치부장

▽정치부=반병희 차장

박성원 최영해 김영식 부형권

윤상호 이명건 이승헌 기자

▽경제부=홍찬선 박중현 김두영 기자

▽기획특집부=윤승모 차장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