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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들여다보기]질박한 지역정서 가득한 채널 만들자

입력 | 2003-10-27 17:40:00


개그콘서트(KBS2 TV)에서 재미있게 보는 코너 중 하나가 ‘박준형의 생활사투리’다. “빠라바라밤, 빠라바라밤… 빰빰빠밤바밤”으로 객석의 분위기를 잡은 후 “경상도요” “전라도요”하면서 지역 사투리를 마치 영어라도 가르치듯 반복해서 가르쳐준다. ‘나는 당신을 사랑 합니다’를 사투리로 표현하는 것은 단연 압권이다. 경상도에서는 “내 아∼를 낳아도”라는 직설적 화법을 사용하지만, 전라도에서는 “앗따, 거시기 허요∼”라고 하면서 은유적 화법을 사용한다.

이런 사투리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말’의 차이를 넘어서 말에 담겨있는 그 지역사람들의 ‘맛’의 차이도 가르쳐준다. 들으면 들을수록 사투리의 감칠맛이 새롭다. 경상도의 맛이 자갈치시장의 생선회 맛이라면, 전라도의 맛은 오래 삭힌 홍어회 맛이다. 이처럼 사투리에는 사전에 나오지 않는 ‘지역 문화와 정서’가 담겨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제까지 우리나라에는 사투리 없는 서울공화국의 방송만 있었다. 서울 말씨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전국화되면서 지역의 말은 생명을 잃어갔다. 지역 말이 사라지면서 지역문화 또한 사라졌다.

개그콘서트의 생활사투리 코너는 일상사 속에서 잊고 있었지만 우리의 피에 도도히 흐르고 있었던 지역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이러한 사투리의 ‘복권’은 영화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개발의 시대, 전국의 일일생활권화와 함께 방송도 전국 네트워크화 되었다. 이 네트워크는 서울의 말과 방송을 전국에 전달하는 일방적 네트워크였다. 그 결과 지역 사람들도 지역의 말씨와 문화를 버리고 서울의 말씨와 문화를 본뜨려고 노력해왔다. “지방방송은 꺼”라는 일상화된 말과 정서가 생겨났던 것도 이 때쯤일 것이다.

이제라도 지역 사투리의 맛과 향이 담겨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기에 우리의 지역방송은 열악하다. 조사에 의하면 KBS MBC 지방사들의 자체 편성비율은 10%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으며, 지역민방의 경우도 3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쯤 되면 KBS MBC 지역사들은 더 이상 지역의 정체성을 담보할 수 없는 서울의 방송 총판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지역민방 또한 ‘SBS의 재전송사’ 쯤으로 간판을 바꿔 달아야 할 것이다.

지역 방송사에서 지역의 향내를 잔뜩 품고 있는 프로그램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아예 지역방송의 프로그램만을 전송하는 독립채널이라도 만들었으면 한다. 서울의 방송에서 찔끔찔끔 맛보는 생활사투리가 아니라, 사투리와 함께 질박한 지역의 문화와 정서가 담겨있는 지역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채널이 생겼으면 한다.

이창현 교수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chlee@kookmi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