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전북]‘위도의 통곡’ 아직 생생한데 방폐장 논란에 또 그늘

입력 | 2003-10-10 21:46:00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참사가 난지 10년이 지났다.

1993년 10월10일 오전 10시경 전북 부안군 위도를 출발해 격포항으로 가던 서해 훼리호가 위도 옆 임수도 근처에서 침몰해 292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통곡의 섬’으로 불리던 위도는 점차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가다 최근 방폐장 유치 신청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참사의 사망자 가운데 위도 주민이 63명이나 됐다. 사망자 유족 200여명은 사고 발생 1년 안에 위도를 떠났다. 사고 당시 도주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검찰의 수배까지 받았으나 나중에 끝까지 배와 운명을 함께 했던 것으로 밝혀진 백운두 선장(당시 55세) 가족도 섬을 떠났다. 백씨의 사위만이 가끔 매년 열리는 위령제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이후 위도에는 10년 동안 300억원이 투입돼 섬 우회도로와 상수도가 개설되고 선착장과 방파제, 여객 터미널이 새로 들어서는 등 기반 시설이 대폭 확대됐다.

사고 이후 위도∼격포를 오가는 여객선도 200t급으로 커지고 하루 6번씩 왕복하는 등 생활 여건은 확실히 나아졌으나 주민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종합개발사업이 사회기반시설 확충에 치우치고 주민 소득과 연계되지 못한데다 고기가 잘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올 초부터는 방폐장 유치를 놓고 주민들이 찬반으로 갈려 분위기마저 더욱 뒤숭숭해졌다. 하지만 사고 당시 1900여명이던 위도 인구는 사고 직후 500여명이 빠져 나가 1400여명까지 줄었다가 방폐장 유치가 거론되면서 1960명으로 다시 불어났다.

서해 훼리호 10주기를 맞아 위도에서는 위령제와 사고 해역을 헤엄쳐 건너는 도영(渡泳)행사 등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행사가 열렸다.

위도 주민들과 유족들은 10일 오전 11시 위도면 진리 바닷가에 세워진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위령제를 가졌다.

한편 위도초등학교 교사와 학생 98명은 사업가 윤현중씨(55)의 초청으로 9일부터 2박3일간의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윤씨는 서해 훼리호 참사 이후 위도초등학교와 인연을 맺어 장학금 등을 지급해왔다.

부안=김광오기자 kokim@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