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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신원미/장수풍뎅이의 공존법

입력 | 2003-08-10 18:24:00

신원미


여름휴가 때 강원 평창군을 다녀왔다. 아이들에게 기억이 될 만한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마침 여정 중에 들른 한 곤충박물관에서 장수풍뎅이 두 마리를 분양받았다. 애완용으로 키우면서 아이들의 관찰력을 키워줄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서였다. 암컷은 분양을 안 한다고 해 서로 의지하며 형제처럼 지내라고 수컷 두 마리를 얻어 우리 집 화단에서 한 식구로 지낸 지 2주일 남짓 됐다.

아이들은 아침에 눈만 뜨면 화단으로 나가 제 담당의 풍뎅이가 밤새 안녕한지 확인하고 나서야 아침 식사를 한다. 나도 아이들과 도서관에서 ‘곤충도감’까지 찾아보며 습성과 식성을 챙기는 부산을 떨었고 남편도 회사에 다녀와서는 녀석들의 안부부터 묻는다. 어느새 집안의 제일 큰 어른이 돼 버린 그들에게서 배운 점이 있어 여기에 소개할까 한다.

두 녀석이 한 집에 살게 된 그날 밤부터 예상치 못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야행성이라 낮에는 가만히 엎드려 있거나, 나뭇가지에 붙어서 미동도 않다가 밤이 돼야 슬슬 움직인다. 그런데 행동 개시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멋진 Y자형의 뿔로 서로 치받으면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게 아닌가. 뿔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는 마치 나무칼이 부딪치는 소리처럼 커서 우리 가족 모두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 정도였다. 어떤 때는 싸움이 너무 격렬해 두 마리를 떼어 놓으면 녀석들은 우리 가족이 넣어준 수박 껍질 쪽으로 달려가서 잠시 목을 축이고는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한 녀석의 등 부분에서 뿔에 찍혀 생긴 상처들을 확인하며 간밤의 ‘전황’을 짐작하기를 열흘가량. 언제부터인가 녀석들의 ‘전쟁놀이’ 소리가 안 들려왔다. 두 녀석의 서열이 정해졌고, 이제는 평화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치열한 다툼 끝에 결국 한 녀석은 자기보다 힘 센 녀석을 인정하고 승복한 후 어리석은 싸움의 의미를 버린 것이다.

한낱 벌레에 불과한 그들의 모습과 최근 우리 사회의 혼탁한 모습을 비교하면서 “이 벌레만도 못한 인간들아”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승부의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합리적으로 순응해 나가는 장수풍뎅이들의 지혜를 우리 사회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신원미 주부·경기 평택시 합정동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