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인감도장을 맡겼다가 자신의 명의를 도용한 대출사기 사건으로 엉뚱한 빚을 갚아야 했던 30대 남성이 2심에서 구제됐다.
황모씨(34)는 1994년 11, 12월 K은행에서 빌린 5000만원을 제때에 갚지 않았다며 한국자산관리공사로부터 2000년 10월 소송을 당했다. 자산관리공사는 은행측으로부터 황모씨의 빚을 포함해 부실 채권을 인수한 상태였다.
왜 소송을 당했는지조차 몰랐던 황씨는 기억을 더듬은 끝에 94년 11월 군 제대 후 가게를 열기 위해 동네사람과 함께 K은행 돈암동 지점에서 대출약정서를 작성하고 예금계좌를 개설한 뒤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를 맡겨뒀던 사실을 떠올렸다. 당시 황씨는 대출이 어렵다는 은행 담당자의 말을 들었으나 인감도장 등을 되돌려 받지 않은 것이다. 황씨는 이후 소송이 제기되면서 누군가가 자신의 인감도장을 도용해 대출을 받고 상당기간 이자까지 납부해 온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 민사19부(김용균·金龍均 부장판사)는 “황씨는 은행과 정식 대출계약을 하지 않았고 대출금 수령권한을 위임한 일도 없었다”며 “당시 은행지점 관계자나 금융사기꾼들이 황씨의 인감도장을 이용해 대출을 받고 돈을 가로챘으므로 황씨는 돈을 갚을 필요가 없다”며 원심과 달리 황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