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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話 국민의 정부]2부 ②대통령 두 아들 구속

입력 | 2003-05-21 17:41:00

송 장관이 2002년 2월 27일 DJ 앞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차남 홍업(弘業), 3남 홍걸(弘傑)씨의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02년 4월 어느 날. 송정호(宋正鎬) 법무부 장관은 업무보고 차 청와대 집무실에서 DJ를 독대한 자리에서 DJ로부터 뜻밖의 부탁을 받았다.

“송 장관은 97년 대통령선거 직전 열린 고검장 회의에서 유일하게 ‘DJ 비자금’ 수사 착수를 반대하지 않았소. 이번 수사도 그렇게 해줄 수 없습니까. 남들이 다 안 된다고 하더라도 좀 도와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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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 가운데서도 이미 수사가 한참 본격 단계에 접어든 홍업씨에 대한 수사를 중단해줄 것을 당부하는 얘기였다. 송정호는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날 두 사람의 대화내용에 대한 당시 여권 핵심 관계자의 증언.

“당시 법무부와 청와대간의 업무협조를 전담했던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비슷한 내용의 전화를 여러 차례 걸었을 겁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도 전화를 했어요. 그러나 DJ도 직접 수사 중단을 당부한 것은 분명합니다. 97년 DJ 비자금 수사 착수에 반대했던 송 장관에 대해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송 장관은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송정호는 DJ와의 대화내용에 대해 현재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수사를 중단할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설명한다.

“누가 전화를 걸었든 간에 그런 요청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검찰에 홍업씨에 대한 수사 중단 지시를 했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몰라요. 사정이 그만큼 심각했습니다.”

수사지휘권은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을 지휘 감독할 수 있다’는 검찰청법 규정에 따라 법무부 장관이 수사 중단을 명령할 수 있는 권한. 그러나 한번도 행사된 적이 없었다.

당시 여야는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사생결단식의 무차별 폭로전을 벌이고 있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대선을 앞두고 정권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DJ의 차남 홍업씨와 막 불거지기 시작한 홍걸씨의 비리연루 의혹을 목표로 삼아 집요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여당인 민주당도 4월 19일 설훈(薛勳) 의원의 기자회견을 통해 “미래도시환경 대표 최규선(崔圭善)씨가 2001년 12월 한나라당 윤여준(尹汝雋) 의원을 만나 이회창(李會昌) 총재에게 전해 달라며 2억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폭로하는 등 이 총재를 직접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런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한 검찰 출신 인사는 청와대가 송 장관에게 홍업씨에 대한 수사 중단을 요구한 배경을 이렇게 분석했다.

“청와대는 당시 홍업 홍걸씨를 모두 구하려고 했습니다. 수사를 중단시키든지 두 명 모두 불구속되게 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려 했던 것이죠. 그러나 오판이었습니다.”

당시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의 설명.

“홍업씨에 비해 홍걸씨에 대한 여론은 상대적으로 좋았습니다. 만약 홍업씨가 먼저 검찰에 출두해 구속됐다면 ‘형제를 구속시키는 것은 지나치다’는 동정론이 나와 홍걸씨는 불구속 기소됐을지도 모릅니다. 무리하게 둘 다 구하려다 둘 다 잃게 된 것이죠.”

당시 상태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킨 것은 최규선의 ‘입’이었다.

4월 19일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최규선은 영장실질심사를 받던 법정에서 “청와대가 사건을 덮기 위해 경찰청 특수수사과 최성규(崔成奎) 과장을 통해 나에게 해외 밀항을 종용했다”고 폭로했다.

최성규는 4월 12일 밤 검찰 출두를 앞둔 최규선과 만나 대책을 협의한 뒤 14일 홍콩으로 몰래 출국했기 때문에 최규선의 법정 진술은 더욱 폭발력이 있었다.

또 5월 초에는 최규선이 검찰에 출두하기 직전 직접 육성으로 녹음한 테이프가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 테이프에서 최규선은 “최성규에게 들었는데 청와대 회의에서 ‘(최규선이) 검찰에 출두하면 최규선의 말 한마디에 우리 정권이 잘못되고 대통령이 하야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최규선을 부산에서 밀항시키면 어떻겠느냐’는 등의 말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궁지에 몰렸고 홍걸씨의 검찰 조사를 촉구하는 여론이 빗발쳤다.

마침내 5월 14일 극비리에 귀국한 홍걸씨는 최규선을 통해 체육복표 사업자인 타이거풀스 인터내셔널(TPI) 대표 송재빈(宋在斌)씨에게서 복표사업자 선정 청탁과 함께 TPI 주식 6만6000주 등을 받은 혐의로 5월 18일 전격 구속됐다.

홍업씨를 향한 검찰의 수사망도 점점 좁혀오고 있었다. 검찰은 이미 홍업씨의 측근으로 비자금을 관리했던 전 서울음악방송 회장 김성환(金盛煥)씨를 5월 4일 구속한 데 이어 6월 2일 홍업씨의 대학 후배인 P프로모션 대표 이거성(李巨聖)씨도 구속했다.

당연히 송정호에 대한 청와대의 압력도 점차 가중됐다. 6월 초부터는 정치권에서 송정호의 경질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지검 한 검사의 증언.

“송 장관은 그때 사표 쓸 결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장관이 방패막이가 돼서 버티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수사 일정에 차질을 빚을 정도로 청와대의 압력이 심했기 때문이죠.”

이 상황에 대한 송정호의 설명.

“6월이 되자 여기저기서 내가 경질될 것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대선을 치르기 위해 내각 개편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는데 ‘법무부 장관이 선거와 무슨 관련이 있나’ 하는 생각에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홍업씨는 결국 6월 21일 김성환 이거성 등과 공모해 22억여원을 수뢰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 직후부터 정치권에서는 송정호를 포함해 경질 대상 장관의 명단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DJ 정부 핵심 관계자의 설명.

“당시 청와대에서는 송 장관의 업무장악 능력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근거가 불분명했습니다. 법무부나 검찰 내부에서는 송 장관에 대한 평판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부 언론에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조직장악 능력이 떨어지는 비경제부처 S장관 등이 경질 대상으로 검토되고 있다’며 사실상 송정호의 경질 쪽으로 모는 듯한 개각 관련 기사가 청와대발로 실리기도 했다.

송정호는 정면 대응하기로 결심하고 청와대에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전달했다.

“업무장악 능력이 모자란다는 것은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 아닌가. 그러나 현재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 (홍업 홍걸씨에 대한) 검찰 수사는 내 뜻과 같은 방향으로 진행됐다. 도대체 뭐가 업무장악 능력 부족이냐.”

DJ는 7월 11일 법무부 장관을 김정길(金正吉)로 교체했다. 99년 6월부터 2001년 5월까지 법무부 장관을 지낸 그의 재발탁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 의외의 인사였다.

이에 대해 여권 핵심 관계자는 “송 장관은 DJ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송 장관에게 덴 DJ는 집권도 몇 달 안 남은 만큼 가장 가깝고 믿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법무부 장관을 찾은 것이다”고 말했다.

송정호는 이임사에서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싸워서 죽는 것은 쉬우나 길을 내줄 수는 없다)’이라는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의 말을 인용한 뒤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다.

“검사는 외압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가져야 한다. 누구도 검찰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개입해서는 안 된다.”

검사들은 송 장관의 이임사가 바로 자신의 교체 배경을 설명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兵風수사 유도’ 있었나 없었나▼

“‘병풍(兵風)’은 다른 사건들을 처리하고 나중에 하겠다고 그랬습니다. 홍업 홍걸씨 수사로 검찰이 여유도 없었고… 미루다보니까 내가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에 수사가 시작되더군요.”

송정호(宋正鎬) 전 법무부 장관은 최근 ‘박지원(朴智元) Ⅹ파일’의 실체를 묻는 취재팀의 질문에 이처럼 우회적으로 시인했다.

‘박지원 Ⅹ파일’이란 송정호의 지인(知人)이 2002년 8월 한나라당에 전달했다는 제보를 일컫는 것. 다음은 그 내용이다.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이 2002년 3월 송 전 법무장관을 불러 병풍, 세풍(稅風),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장남 정연(正淵)씨가 관련됐다는 루머가 돌던 근화제약 주가 조작사건 등을 수사하라고 요구했으나 송 전 장관이 이를 완곡하게 거부했다.”

2002년 7월 11일 법무장관이 송정호에서 김정길(金正吉)로 교체된 뒤인 7월 31일 의무부사관 출신 김대업(金大業)씨는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부인 한인옥(韓仁玉)씨가 장남 정연씨의 병역면제 과정에 개입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이 김씨의 주장을 ‘허위’라며 반격하자 김씨가 한나라당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고 한나라당도 김씨를 같은 혐의로 맞고소하는 사태로 확대됐다. 결국 서울지검 특수1부는 8월 2일 이 사건 수사에 전격 착수한다. 송정호가 거절했던 병풍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8월 21일. 민주당 이해찬(李海瓚) 의원은 기자들을 만나 “2002년 3월 ‘누군가에게서’ 정연씨의 병역면제 의혹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도록 요청받았다”고 말해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야당은 즉각 공세에 나섰다. 그 다음날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병역공작은 청와대에서 기획했고 총기획자는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지원은 “송 전 장관에게 그런 요구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고 문제의 발언을 한 이해찬 의원도 검찰의 소환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어 ‘병풍 유도’ 의혹은 무성한 의혹만 남긴 채 실체 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동관기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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