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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기타]'부부 살어 말어'…철없는 남편… 속좁은 아내…

입력 | 2003-05-16 17:42:00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너무 모른다.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이 돌이킬 수 없는 불화를 낳는다. 여성학자 오한숙희씨는 ‘부부 살어 말어’를 통해 부부의 행복을 지킬 수 있는 원포인트 레슨을 시도한다. 부부갈등을 소재로 한 KBS 드라마 ‘부부클리닉’의 한 장면.동아일보 자료사진


◇부부 살어 말어/오한숙희 지음/280쪽 9000원 웅진닷컴

야근 후에 술 한잔하고 새벽에 집에 들어오니 가족이 다 자고 있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밖에 나가서 안 들어와도 기다리는 법인데….” 남편은 서운했다.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워 밥을 달라고 했다. 아침 먹을 때까지 기다리라더니 마지못해 찬밥을 챙겨준다. 그런데 아들이 밥 먹겠다고 나타나니까 갑자기 계란프라이를 해주는 것이 아닌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한 중년 가장의 ‘삐친 표정’은 그리 낯설지 않다. 남편들은 아내를 볼 때면 ‘평소 나에게 자식한테 하는 것 반의반만 해보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한다. 영 틀린 말도 아니다. 다음은 한 아내의 고백.

“남편이 때를 넘겨서 들어오면 ‘밥 먹었어요’ 하고 물으면서도 열 번에 한 번 꼴로는 속으로 ‘먹고 왔다고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 그런데 자식은 안 그래. 먹고 왔다고 해도 더 먹이고 싶고 옆에 앉아서 자꾸 많이 먹으라고 하게 되고 그래.”

우리나라의 부부관계는 왜 부부중심이 못되는 걸까. 여러 이유 중 여자들의 자식집착증도 포함된다. 이 책에 따르면 그 집착의 정도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채워지지 않는 틈에 정비례한다. 다 큰 남자들의 ‘삐침증’도 크게 보면 엄마의 집착과 맥이 닿는다. 책 속에 등장하는 한 남성의 얘기다. “태어나면서부터 엄마한테 대접받고 자라서 마누라가 그만큼 안 해주면 기분 나쁜 거야. 그걸 말로 하기 치사하니까 삐치는 거지.”

여성학자인 저자는 10년간의 부부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날 한국 부부들의 진솔한 육성을 전해준다. 돈 벌어오는 남편과 그 돈을 쓰는 아내, 정년퇴직한 뒤 가족에게 소외감을 느끼는 남편과 이런 남편이 불편하기만 한 아내, 아내의 친구들 모임에 얹혀서 따라오는 ‘얹힌 회‘ 남편, 고부간의 갈등, 배우자의 외도 등. 이 책은 이렇게 다양한 부부이야기를 감칠맛 나게 펼친 뒤 해법도 제시한다. 사실 남의 부부가 사는 모습을 아는 것 자체가 좋은 공부가 된다. 다른 부부를 통해 ‘우리’를 비춰볼 수 있으므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균형감각. 저자는 이혼한 뒤 친정어머니 및 결혼 안한 언니와 함께 살면서 남편과 아내의 처지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돈벌러 밖에 다니는 저자와 집에서 살림하고 애들 키우는 언니의 관계는 여느 집 부부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부부상담을 통해 발견한 것은 인생의 많은 문제가 부부관계에서 비롯되며 부부관계도 인간관계 중 하나라는 깨달음이었다. ‘부부일심동체’는 부부가 지향해야 할 최고의 목표일뿐 현실은 아니었다는 것.

게다가 여자들의 의식은 급속도로 변하는데 남자들의 변화속도는 더디다. ‘인생역전’은 로또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내는 ‘세상 밖으로’, 남편은 ‘집으로’. 부부의 삶은 엇박자로 나간다. 40대부터 여자들에겐 끊어졌던 모든 동창회와 친목계가 부활된다. 60대 남자들은 자기 옆엔 아내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늙어서 다 큰 자식 앞에서 별거 아닌 일로 티격태격하는 부부도 많다. 그동안의 섭섭하고 불만스러운 감정이 굳은살처럼 박여 있어서다. 로마가 그렇듯 손잡고 약수터에 가는 노부부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부부관계에서도 내가 한 것만큼 돌아온다.

결론은 보통 인간관계의 도리와 원칙만 지켜도 웬만한 부부문제는 해결된다는 것. 거창한 룰도 아니다.

‘아내도 사람이다. 고기도 먹고 싶고 놀고도 싶다. 부모형제가 소중하고 친구를 만나면 즐겁고 신난다. 이걸 남편들이 알아야 한다. 남편도 사람이다. 만능인간이 될 수 없고 힘들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사랑받고 싶다. 이걸 아내들이 알아야 한다. 남자가 싫은 건 여자도 싫고 여자가 좋은 건 남자도 좋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