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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보니]유원상/‘IT산업’ 일본을 경계하라

입력 | 2003-05-02 18:34:00


최근 들어 부쩍 일본의 언론매체들이 한국의 고속인터넷 보급 상황 등에 관한 보도를 많이 하고 있다. 정보통신 선진국인 한국으로부터 한 수 배워야 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일본에 유학 온 것이 십수년 전. 그 사이 일본에서 결혼하고, 정보통신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반면 부정적인 소식이 들리면 속이 상한다. 인터넷망을 통해 오가는 콘텐츠 가운데 음란물 비중을 언어별로 따져보면 영어 다음으로 한국어가 많다는 소식도 그런 것 중 하나다. 다행히 콘텐츠 업체들의 자율규제 움직임이 있다고 하니 기대를 걸어본다.

일본에서도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물 유통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PC를 이용한 콘텐츠 서비스나 e메일보다 휴대전화를 통한 인터넷 서비스가 더 활발한 편이다. 10대 소녀들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사실상의 매춘을 하는 것이 사회문제화되면서 콘텐츠 업체들을 상대로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한 음란물 유통이 한국에 비해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다.

일본은 지금까지 미국은 물론 한국에도 뒤떨어진 정보기술(IT) 후진국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발전 속도가 빠른 측면도 있다. 즉 휴대전화와 개인휴대단말기(PDA) 등 모바일을 중심으로 한 무선인터넷이 전면에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휴대전화 회사인 NTT 도코모의 i-mode 시스템은 국제 표준화를 논할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든든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쌓아올린 노하우와 넉넉한 기술 인력이 구체적인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위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한국인이 만들어낸 특수한 공간인 PC방은 동남아는 물론 중동까지 파고들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렇게 대단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의 경우 인터넷 오락보다 게임기 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게임의 나라’ 일본답게 재미있는 게임 소프트웨어의 발매 첫날에는 판매점 앞이 장사진을 이룬다. 특정 게임의 공략 서적만 해도 수십만부가 팔리는 실정이다.

휴대전화 인터넷 서비스의 요금 체계와 편리한 인터페이스, 충실한 콘텐츠, 고성능 오락기 등의 장점을 넘어서지 않는 한 PC방 같은 유선 인터넷이 일본 오락시장을 휩쓸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일본의 강력한 콘텐츠 업체들의 존재 때문이다.

일본의 한 인터넷 관련 종사자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인터넷 선진국인 한국이 먼저 경험해 성공한 분야는 좀 더 연구를 해 보다 나은 서비스를 만들면 되고, 실패한 분야는 따라할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한국을 인터넷 선진국이라 불러 주는 것은 고맙지만 이럴 때는 일본인들이 얄밉다.

현재 한국은 유선 인터넷과 닷컴 비즈니스 영역에서 일본보다 한 걸음 앞서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방심하고 있다간 한국이 계속 ‘정보통신 대국’ 소리를 듣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정보통신기업들이 새 기술을 개발해내고, 콘텐츠 업체들이 정보의 질에 더욱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 재일 한국인들이 조국이 ‘정보통신 대국’이란 긍지를 갖고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도록 말이다.

유원상 일본 도쿄 JDD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