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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실패 200명 보고서]주먹구구식은 안된다

입력 | 2003-04-06 18:20:00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창업열풍이 거세다. 하지만 창업자들 중 많은 이가 투자자금조차 회수하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왜 그럴까. 본보와 창업전문 컨설팅업체인 한국창업전략연구소(소장 이경희)는 신규 창업자들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창업에 실패한 200명의 사례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세 차례에 걸쳐 나눠서 게재한다.》

#사례 1#

김모씨는 지난해 경기도 신도시에서 숯불구이고기 전문점을 창업했다. 자금의 60% 이상을 담보대출과 카드대출, 할부금융 등을 통해 마련한 모험이었다. 바로 옆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준공으로 대형음식점이 즐비한 외식타운이 형성되는 것을 보고 “식당이 될 것 같다”고 판단이 섰던 것.

김씨는 자주 다니던 숯불갈비집이 늘 손님들로 붐비었기에 이 업종을 마음에 두고 있던 차였다. 주방관리가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주방설비업자를 통해 알게된 주방장에게는 지분까지 약속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주방장도 자기 친척까지 종업원으로 일하게 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하지만 첫 달 매출은 기대이하였다. 개점 직후 반짝 매출 기간이 지나자 하루 매출액은 15만∼20만원 선으로 떨어졌다. 똑같은 상황이 몇 달 동안 계속되자 대출이자와 임대료 내기에 급급했다. 주방장 역시 실망해 그만뒀다. 영업악화로 이혼위기까지 몰린 김씨는 5000만원의 손해를 보고 7개월만에 점포를 정리했다.

▼컨설턴트의 분석 ▼

이경희 소장은 “김씨는 의욕만 앞섰을 뿐 주먹구구 창업으로 일관했다”고 진단했다. 인근 상권의 특성을 분석하지 않은 점, 상권에 따른 메뉴설계를 해보지 않은 점, 경쟁점 조사도 하지 않은 것 등이 주먹구구 창업의 대표적인 예.

특히 가족 단위 젊은 부부들이 주고객인 곳에서 돼지고기 숯불갈비는 적절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김씨는 대학가에서 볼 수 있는 드럼통 테이블을 설치했지만 이는 어린 자녀를 동반한 고객들에게는 전혀 맞지 않았다. 나중에 리모델링을 시도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사례 2#

박모씨는 창업박람회에서 해물패스트푸드라는 이색 업종을 보고 “색다른 메뉴라 괜찮겠지…”라고 판단해 창업을 결심했다. 개설자금만 3500만원이 드는 업종이었지만 자금이 5000만원밖에 없었던 그는 점포를 외진 곳에 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김씨가 택한 메뉴는 젊은층이 좋아할 만한 메뉴인 데 반해 식당은 연립주택 근처로 중장년층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에 있었다. 김씨는 가게에서 조금만 나가면 큰 도로 건너편에 아파트 단지가 있어 그 쪽 고객들을 ‘잠재고객’으로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박씨는 메뉴를 된장찌개 삼계탕 순두부김치찌개로 바꿨지만 매출은 하루 10만원을 넘기지 못해 1년2개월 만에 식당을 정리했다.

▼컨설턴트의 분석 ▼

박씨는 창업의 ‘ABC’인 입지분석조차 하지 않았다. 고객입장에서 ‘도로 건너편’은 ‘엄청난 거리’인데도 박씨는 이 점을 지나쳤다. 길 건너 쪽에 살고 있는 아파트 주민이 도로를 건너 연립주택가 이면도로에 있는 박씨 점포를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 자신의 자금에 맞는 업종을 골라야 하는데, 무리한 업종을 골라 입지선정에 실패했다. 입지가 좋지 않으면 특별한 홍보전략을 세워야 하는데 이 같은 전략적인 사고가 없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창업자 200명중 계획서 작성 한명도 없어 ▼

이경희 소장은 “소자본 창업에 실패한 사람들을 상담해보면 막연한 기대와 의욕만 가졌을 뿐 철저하게 조사하고 검증하면서 창업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조사 대상이었던 실패한 창업자 200명 중 사업계획서를 작성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상권이나 입지를 조사하면서 리포트를 작성하기는커녕 창업 전문강좌를 수강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업종과 입지 선정의 실패는 주먹구구 창업의 대표적인 예. 특히 지역 특성이나 자신의 장단점도 분석하지 않고 대충 선정한 업종 때문에 실패한 창업자들이 많았다.

업종마다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시기도 다르고 고객관리 및 마케팅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주먹구구식 창업은 눈을 감고 운전을 하는 것처럼 ‘위험한 사업전략’이다.

그러자면 성공한 점포는 물론 실패한 점포 유형까지 파악하고, 해당 사업을 둘러싼 여러 가지 환경 조사를 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을 거쳐서 창업하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또 실패한 창업자 200명 중 70∼80%는 인테리어나 시설과 간판에만 신경을 쓰고 정작 자신이 팔아야 하는 상품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창업했다.

▼실패의 원인을 보는 시각 차이▼

창업에 실패한 사람

1위:경쟁점(25%)

2위:자금력 부족(20%)

3위:주먹구구식 창업(18%)

4위:업종 및 경기 변화(15%)

5위:전문성 부족(14%)

6위:기타(8%)

전문가(한국창업전략연구소)

1위:주먹구구식 창업(30%)

2위:전문성 부족(24%)

3위:경쟁점(15%)

4위:자금력 부족(13%)

5위:업종 및 경기변동(7%)

6위: 기타(9%)

*분석 대상:실패한 창업자 200명, 자료:한국창업전략연구소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향기배달사업 박순씨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 ▼

향기배달 사업으로 성공한 박 순씨가 자신의 향기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최호원기자서울 송파구 풍납동에서 향기배달사업을 하는 박순(朴淳·45)씨는 매달 600여만원의 순이익을 올리는 성공한 창업자다.

술집, 카페, 옷가게 등 향기가 필요한 고객들에게 5만원 상당의 향기분사기를 설치해주고 매달 2만원 정도의 향기 원액을 제공한다.

지금은 직원도 2명을 두고 있어 ‘사장님’이라는 소리가 낯설지 않다.

하지만 4년 전만 해도 박씨는 벼랑 끝에 선 전형적인 창업 실패자였다. 1998년 외환위기로 K정보통신(IT)업체를 떠나기 전까지 박씨는 월급 300만원을 받았다.

이직은 물론 쉽지 않았다. 결국 박씨는 퇴직금 2500만원을 들고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300만원이면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1주일 만에 자리를 잡았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묻지마 창업’이었어요.”

다른 포장마차의 텃세를 피해 사람들이 뜸한 지역으로 밀리고 밀린 박씨는 매일 적자에 시달렸고 결국 한 달 만에 장사를 접었다.

두 번째 창업으로 분식점이었다. 보증금 500만원, 월세 50만원으로 얻은 가게가 변변할 리 없었다. 8평 넓이에 테이블 3개가 전부였다.

“시장조사를 세밀하게 하지 않은 것이 패착이었죠. 경쟁 분식점들의 장단점을 신중하게 분석했더라면 그런 작은 가게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두 번의 실패 후 박씨의 주머니에는 500만원만이 남았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엔 ‘신중함’과 ‘치밀함’이 가득 했다.

처음으로 H창업컨설팅회사에 찾아가 3만원을 내고 1시간 정도 상담을 받았다.

10개의 사업아이템과 3, 4곳의 프랜차이즈업체 리스트를 손에 쥔 박씨는 이후 한 달 이상 각 사업아이템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며 매출과 순이익, 얼마나 수입이 안정적인지, 고객은 쉽게 찾을 수 있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 물었다.

그래서 정한 것이 향기배달 프랜차이즈업체의 대리점이었다. 마진율도 50% 정도로 높았고 매달 향기 원액을 파는 수입구조도 안정적이었다.

물론 창업 후 1년간은 매일 밤 12시까지 향기 고객들을 찾아 거리를 돌아다녔다. 3년여 만에 150여곳의 고객을 확보하자 사업은 안정됐다.

박씨는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느냐가 창업 성공의 열쇠”라며 “보다 많은 정보를 얻으려면 초조해하지 말고 충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실패뒤엔 이유가 있다 ▼

누구나 창업할 수는 있지만 모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통상 창업성공 비율은 10명 중 3명꼴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창업에 실패할까.

한국창업전략연구소는 지난 4년 동안 매출부진 등으로 가게나 사무실 문을 닫은 창업실패자 200명을 상담한 뒤 실패 과정과 원인을 추적해봤다.

실패 원인을 분석해보니 경영자의 개인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예를 들어 유행하는 업종을 창업했다가 업종전체가 쇠퇴기로 접어들면 경영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또 본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프랜차이즈로선 본사의 위기가 곧 브랜드 이미지의 동반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업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인근에 대형 경쟁업체가 출현해 점포가 있는 현재의 상권 전체가 쇠퇴하거나 혹은 사회적으로 어떤 큰 현안이 발생해 관련 업종 전체의 매출이 떨어지는 것도 개인이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실패사례를 조사해보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개인이 노력만 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원인으로 실패한 창업자들이었다. 주먹구구식 창업, 전문성의 부족 등으로 인한 창업실패는 준비만 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난관들이다.

문제는 이 같은 유형의 창업실패가 훨씬 더 많다는 점. 주먹구구식 창업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창업강좌를 하루만 들어도 배울 수 있는 종업원관리를 못해 실패한 사람도 있었다.

또 자신의 자금여력이나 주변 상관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업종만 보고 창업했던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심지어 “왜 창업에 실패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한편 창업에서 초기 성공이 결코 영원한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어느 날부터 고객이 점차 줄어들고, 매출이 줄어드는 등 위기가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 이탈도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빠른 속도로 진행되므로 징후를 미리 포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조사해보니 창업 8개월에서 2년 사이가 가장 ‘위험한 시기’였다. ‘위험한 시기’를 넘기기 위해서는 업종의 라이프 사이클을 조사해야 하고 고객반응도 중간 점검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변하지 않는 것은 결코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www.changup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