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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민병헌展…'안개의 속살' 카메라로 잡아

입력 | 2003-03-18 18:30:00

민병헌 작 '안개' 시리즈.


20여년간 흑백사진에만 몰두해 온 중견작가 민병헌(48) 은 사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다. 빛과 원근을 무시한 그의 화면은 모두 회색빛 안개로 가득하며 피사체들은 마치 한지에 스며든 먹처럼 ‘번져’ 존재한다.

물오리 한 마리가 시옷(ㅅ)자를 가늘게 그리며 잔잔한 강을 가르는 작품도 배경은 온통 짙은 새벽 안개다. 화면을 오래 들여다 보고 나서야 피사체가 무리 떠난 한 마리 물오리임을 알아 차리게 된다.

그가 4월4일까지 서울 청담동 카이스갤러리에서 16번째 개인전을 연다.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작업실 주변에서 일년 내내 찍은 ‘안개’ 연작과 ‘Flow’ 등 30여점이 전시된다.

‘안개’ 연작은 자욱한 안개에 잠겨 희미한 나무, 들판, 호수, 전깃줄 등 전원 풍경을 담은 작품들. 새벽 녘 고가도로, 멀리 보이는 서울 야경도 존재한다. 인공적이고 도시적인 것들이 서정적이고 자연적인 풍경들로 탈바꿈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Flow’는 개울물 표면을 클로즈업 한 것으로 양평 한강 변에서 안개가 피어오를 때마다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섬세한 물결 이미지가 추상화같기도 하고 수묵화같기도 하다.

그의 앵글에 잡힌 것들은 거창한 피사체가 아니라 안개, 눈, 잡초, 물결 등 어찌보면 별 것도 아닌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그의 카메라를 통해 소박하지만 정겨운 서정과 여운으로 되살아 난다. 풍부한 여백에서는 동양적 감수성이 읽힌다. 2년 전에는 인체의 아름다움을 자연미가 느껴지는 회화 기법의 흑백 사진으로 제작·전시해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02-511-0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