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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저편 265…1933년 6월 8일(10)

입력 | 2003-03-12 18:25:00


“나는 내내 신경 쓰고 있는데, 저 사람은 내가 여기 있는 줄 알면서 한 번도 쳐다보지 않는다. 한 번쯤 봐주면 어떻다고”

종실은 토라진 듯 입을 뾰로통하게 하고 미나리를 뜯었다. 제일 나이가 많아 손자가 일곱이나 있는 정선이 속옷과 기저귀를 빨면서 잠긴 목소리로 밀양 아리랑을 불렀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왜 왔던가 왜 왔던가 왜 왔던가

가마 타고 시집은 왜 왔던가

아이스 케-키! 아이스 케-키! 엿 사세요 엿이요! 커다란 양철 가방을 목에다 걸고 아이스케키를 파는 소년과 엿 파는 소년이 목청을 겨루기 시작하자 정선은 흥이 깨지는지 노래를 그만두었다. 영남루 돌계단으로 갓을 쓴 노인들이 부채질을 하면서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삼나무 검은 가지 너머로는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삼문동과 역 앞에서 산책 나온 일본 사람들이 느긋하게 오후의 햇살을 쪼이고 있다. 용두목 쪽에서 달려오는 사람이 있다. 보폭이 크고 속도도 꽤 빠른데, 키가 크고 야윈 탓인가 말이나 사슴보다는 날갯짓하며 물 위를 달리는 물총새처럼 가볍게 보인다. 여자들은 일하던 손길을 잠시 멈추고 달려오는 남자를 바라본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목덜미에 힘을 주고 등 뒤로 지나가는 숨소리에 귀 기울이고,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남자의 등이 무봉사 쪽으로 사라지자 후우 하고 한숨을 토한다.

“점점 빨라지네. 입고 있는 셔츠가 다 떨어져 나갈 것 같더라”

“남정네가 달리는 모습, 이 세상에서 젤로 아름다운 것 같다”

“아이고, 자네 서방이 달리면 꽤나 아름답겠다”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