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물은 생명이다3]댐은 필요악인가

입력 | 2003-03-10 19:12:00

국립공원 변산반도 내 직소천에 저수용량 4150만t 규모로 건설된 부암댐의 전경. 국내의 다목적댐 중에서는 주변 경관 등을 고려해 가장 환경친화적으로 건설됐다는 평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 한국수자원공사



《“저기 오른쪽에 죽 뻗은 길 보이죠. 호수 물에 막혀 자유로이 오가지 못하게 된 야생 동물들이 다닐 수 있게 만들어 놓은 통로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차를 몰고 동쪽으로 2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다이아몬드밸리 호수. 남부 캘리포니아 물관리국(DWR)의 직원인 팀 스트로브는 호수 서쪽, 댐 옆에 나 있는 폭 500m가량 되는 길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콜로라도강 등에서 끌어온 물을 저장했다가 인근의 샌디에이고와 리버사이드 지역에 대 주는 이 저수지는 한눈에 보기에도 여느 댐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연재물 리스트로 바로가기

산 중턱에 강물을 막아 놓은 게 아니라 평지에 둑을 쌓아 인공호수를 만든 것이다. 이른바 오프 채널(Off-Channel) 댐이다. 550만평의 이 인공호수는 전통적인 댐처럼 강의 물줄기를 바꾸지 않아 주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 그러면서도 저수기능을 충실히 해내 ‘대안 댐’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

북부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밸리 등에도 이런 종류의 댐이 건설될 예정이다.

▽환경과 개발의 공존=다이아몬드밸리 호수는 강물을 막아 댐을 만드는 지금까지의 수자원 개발 방식에 일대 변화를 보여 준다.

DWR의 수석 엔지니어인 정일환 박사는 “물이 부족한 미국 서부에는 댐을 건설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면서도 “그러나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종전처럼 강을 막아 댐을 짓는 방식은 더 이상 안 된다”고 말했다.

1992년 채택된 리우선언과 의제 21은 ‘환경과 조화된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여기서 말하는 환경과의 조화는 좁게는 자연, 넓게는 인간과의 공존을 의미한다.

지난 30여년간 꾸준히 댐을 건설해 온 한국도 이 같은 큰 흐름에서 벗어날 순 없다. 99년 건설교통부의 ‘새천년 친환경건설선언’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효율성과 환경의 조화’라는 새로운 기준에 맞춰 다양한 대안들이 실험되고 있다.

건교부가 20개가량 건설할 계획을 갖고 있는 ‘지하 댐’도 그중 하나다. 지하 댐이란 이름 그대로 하천 바닥을 파서 그 속에 물을 보존하는 단순한 원리다.

92년 강원 속초시의 쌍천 하류에 건설된 국내 유일의 지하 댐은 100일 이상의 가뭄에 버틸 정도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저수 용량을 갖춘 댐이 지어졌지만 쌍천 주변은 겉으로 별다른 변화가 없다. 자연과 주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 것이다.

▽한국적 대안 찾기 진통=그러나 국내에 쌍천과 같은 조건을 갖춘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미국의 다이아몬드밸리 호수 같은 오프 채널 댐을 짓는 것도 지형적 조건의 차이를 따져볼 때 효율적인 대안이 되긴 힘들다.

가파른 산악이 많아 지상 댐 건설을 거의 유일한 수자원 개발 방식으로 삼아온 한국에선 ‘친환경’을 고려한 해답 찾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댐 건설을 놓고 환경단체와 거센 마찰을 빚고 있다.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들의 반대운동으로 92년 전남 탐진댐 건설 이후 새로운 다목적 댐 공사는 완전히 중단된 상태.

댐 건설 논란의 핵심은 미래의 물 수요에 대한 이견이다. 댐 건설을 주장하는 건교부나 수자원공사측은 미래의 물 부족 사태와 홍수조절을 대비해 댐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경우 연간 강수량은 세계 평균의 1.3배지만 인구밀도가 높고 계절에 따른 강수량의 변동폭이 큰 탓에 1인당 수자원은 세계 평균의 11%에 불과하다. 2011년에는 한 해 물 부족량이 소양강댐의 유효 저수량(18억t)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 수요 전망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고개를 젓고 있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국장은 “정부가 과거 댐 건설의 근거로 내세운 예측대로라면 이미 심각한 물 부족을 겪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물 낭비를 줄이고 ‘녹색댐’(삼림을 이용한 댐)을 강화하면 될 걸 수요를 과장한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주장이다.


▽기술보다 중요한 사회적 합의=정부와 환경단체, 둘 중 어느 쪽 주장이 맞는다고 결론을 내리긴 힘들다. 따라서 기술적 대안을 찾는 것 못지않게 사회적 합의의 대안을 찾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댐이 2700여개에 이르는 일본도 댐 건설과 관련해 주민과의 합의를 얻어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미야가세(宮ケ瀨)댐은 계획 단계에서 2001년 완공할 때까지 무려 30년 이상 걸렸다.

사가미(相模)강 상류에 있는 일본 수도권 최대의 다목적댐인 미야가세댐은 1969년 공사계획을 마련할 때 배수로를 2㎞로 만들어 공사영향을 줄였다. 댐 공사 기간 중 현장을 우회해 물길을 돌리는 배수로는 국내의 경우 1㎞를 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또한 각종 공사 자재를 실어 나를 44t 규모의 육중한 덤프트럭이 도로를 훼손시킬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중장비를 모두 분해해 현장으로 옮긴 뒤 재조립해서 공사에 투입하기도 했다.

사가미강 수계의 도카미치 슈지(德道修二) 광역수관리과장은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는 댐 계획에서부터 준공까지 평균 30년 정도를 잡고 있다”며 “첫 10년간은 주민들과 시민단체 등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는 데 투입한다”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주 물개발위원회(TWDB)의 빌 멀리칸 부국장은 “댐을 지을 때 인근 주민에게 운영과 유지 권한의 일부를 주는 등 의사 결정을 함께 하는 게 제도화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하면 ‘개발’과 ‘환경’의 거리가 너무도 큰 한국. 자연과 댐의 공존 이전에 사람과 사람의 간극을 메우는 게 먼저 넘어야 할 산이다.

로스앤젤레스·오스틴=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도쿄=이 진기자 leej@donga.com

▼美 스키너 펌프장 "물고기 한마리도…"▼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지역의 수원인 샌와킨 델타 지역에는 환경에 대한 세심한 관심을 보여주는 곳이 있다. 샌와킨 델타의 물을 캘리포니아 수로로 흘려 보내는 스키너 펌프장의 한쪽에 마련된 어류 보호시설이 그곳.

물을 수로로 퍼 줄 때 들어온 민물고기들이 양수기에 빨려 들어가 죽지 않도록 어도(魚道)를 따로 만들었다. 촘촘한 망으로 된 어도로 물고기가 들어오면 관리자가 하루 세 차례씩 본래의 물길로 돌려보낸다. 간단해 보이지만 5, 6단계의 작업이 필요한 일이다.

이 시설의 책임자인 제임스 오돔은 ‘수거한’ 물고기 수를 적은 표지판을 가리키며 “20분 만에 32마리가 잡혔다”고 말했다.

간혹 멸종위기에 처한 이 유역의 고유 어종들도 볼 수 있다. 물고기에 꼬리표를 달아 생태계의 변화를 추적하기도 한다. ‘그까짓 물고기 몇 마리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펌프장은 66년부터 30년 넘게 이 일을 해 오고 있다. 자연, 곧 생명에 대한 이들의 의식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의 많은 댐들에도 이런 ‘고깃길’은 일반화돼 있다. 심지어 동굴에 사는 박쥐가 서식처와 먹이가 있는 곳을 안전하게 왕래할 수 있도록 댐 부근 도로에 횡단 지하도를 설치한 곳도 있다.

한국도 전남 장흥군의 탐진댐에 물고기가 이동할 수 있도록 크레인식 어도를 만드는 등 이와 유사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반드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댐 건설 자체에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은 ‘환경 친화적 댐’이란 용어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오스틴=이명재기자 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