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시장이 위기다. 펀드자금은 늘었지만 단기 부동(浮動)자금이 절반을 차지한다. 낮은 금리와 채권시장의 난조로 펀드매니저들이 채권형 펀드의 수익률을 높이기가 쉽지 않다. 반면 고질적인 단소(短小)펀드의 난립 현상은 다소 개선됐다. 새해에는 통합자산운용법안이 도입되는 등 시장에 긍정적인 변화도 예상된다.
한국 펀드시장의 현재와 새해 전망을 2회에 걸쳐 짚어본다.》
▽자금 단기 부동화 심각=백경호 국민투신운용 사장은 “지난해 펀드자금 구조의 질은 더욱 나빠졌다”며 “간접투자자금이 자본시장과 경제에 도움이 되려면 장기 안정자금이 많아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라고 말했다.
투자신탁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투신권 전체의 펀드 설정액은 174조1737억원으로 2001년 말보다 12.3%(19조1367억원) 늘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절반은 단기채권형 펀드와 머니마켓펀드(MMF)에 들어있어 단기부동자금 현상이 극심하다.
단기채권형 설정액은 2001년 말보다 10조원가량 늘어난 37조1102억원으로 전체의 20.5%를 차지했다. MMF 자금은 14조원가량 늘어난 49조4822억원으로 27.3%.
투신협회는 “이 돈은 금융시장이 불안하면 언제든지 급속하게 이동할 수 있어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어려운 자금”이라고 지적했다.
주식에 자금의 60% 이상을 투자하는 주식형의 설정액은 전체의 5.8%인 10조4831억원에 불과했다. 투신사들이 기관투자가로서 증시를 떠받칠 힘이 크지 않다는 뜻.
▽채권형 펀드 수익률 비상=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설정액 1000억원 이상인 전체 채권형 펀드의 평균수익률은 5.40%로 좋지 않은 편이다.
금리가 최저 수준이지만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은 기업들이 채권을 발행하지 않아 펀드의 투자 대상인 회사채 물량이 부족했다. 그나마 물량이 많았던 카드회사채는 하반기 들어 신용등급이 나빠져 리스크가 커졌고 거래도 잘 안 됐다.
이병렬 대한투신운용 채권운용1팀장은 “금리위험 신용위험 유동성위험 등이 겹쳐 채권형 펀드들의 수익률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유병득 한국투신운용 사장은 “올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여 채권형 펀드를 어떻게 운용하느냐가 각 회사의 희비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펀드 장대(長大)화 현상은 완연=한국은 펀드가 많고 규모가 작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투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펀드 수는 5855개로 전년 말보다 818개 줄었다. 1999년 1만3544개를 나타낸 이후 수가 줄어드는 추세가 완연하다.
펀드의 대형화 추세도 나타나고 있다. 펀드 1개의 평균설정액은 2001년 말 232억원에서 지난해 말 수익증권 295억원, 뮤추얼펀드 408억원으로 늘었다.
설정액 500억원 이상 펀드 수는 880개로 수량 기준으로는 전체 펀드의 15.3%, 설정액 기준으로는 전체의 76.8%를 차지했다.
그러나 투신협회는 “미국 펀드의 평균 규모가 7억9000만달러(약 9480억원)인 것에 비하면 아직은 더 커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신석호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