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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글꼴 어떻게 달라졌나]‘東亞만의 힘’을 담았다

입력 | 2002-12-31 18:09:00


2003년 1월1일부터 동아일보의 지면이 달라졌다. 1998년 전면 가로쓰기 전환 이후 사용해 온 본문 및 제목 글꼴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전용글꼴을 개발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본문용 글꼴을 개발·보유해 온 윤디자인연구소와 함께 만든 동아일보의 새 글꼴은 과거보다 훨씬 선명하고 안정된 모습으로 디자인됐다. 동아일보가 가진 저력과 디지털 정보사회에서의 비전을 바탕으로 독자와 보다 명료하게 의사소통 할 수 있는 글꼴을 마련한다는 게 이번 개발작업 내내 동아일보사가 견지한 디자인 콘셉트였다.

이렇게 ‘동아일보만의 개성과 힘’을 글꼴에 담아 독자들이 차별화된 지면을 보고 느낄 수 있게 한 것은 그동안 국내의 신문사들이 서로 유사한 글꼴을 사용해 온 현실에 비추어 의미있는 변화다.

고딕계열 4종, 명조계열 4종으로 구성된 새 글꼴은 한자와 부호를 포함해 종류별로 1만자 전후이고 모두 8만5682자의 방대한 양이다.

윤디자인연구소의 윤영기 소장은 “새 글꼴은 동아일보사의 확실하고도 구체적인 방향 제시, 우리 연구소의 축적된 노하우가 어우러져 이뤄낸 결실”이라며 “21세기를 주도하는 ‘신뢰받는 신문’ 동아일보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고 가독성과 완성도를 동시에 추구하는 독자들의 시각적 요구에도 부응하는 기념비적인 글꼴의 탄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새 글꼴은 한글의 특징인 네모틀 글자의 내부 공간을 보다 균일하게 배분하고 획의 불필요한 돌기를 제거하는 등 단순명료한 현대적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특히 제목용 글꼴은 힘과 강직함을 갖도록 획을 굵고 반듯하게 했다.

그런가 하면 편집스타일에서 자간(字間), 띄어쓰기 간격은 과거보다 조금 좁힌 반면, 행간(行間)은 조금 넓혀 정보의 양에 차이가 없으면서도 시선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도록 배려한 것도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예 글꼴을 디자인하는 단계에서부터 낱자들이 모여 이루는 글줄의 무게 중심을 상단으로 옮긴 것도 이 같은 자연스러운 시선의 흐름에 도움이 되었다.

동아일보사는 지난달 새 출력기를 도입, 인쇄용 필름의 해상도를 909dpi에서 1200dpi로 올렸다. 이번에 도입되는 새 글꼴이 고품격의 인쇄시설과 시너지를 낼 경우 동아일보 지면의 가독성은 한층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새 글꼴 개발팀은 “새 글꼴이 낱자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동아일보의 정체성까지 확연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소개하면서 “앞으로 지면 및 온라인 글꼴의 통일성 등과 같이 동아일보사의 글꼴 정체성을 확장하는 문제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김창희기자 insight@donga.com

●어떻게 변해 왔나


동아일보가 창간 이후 사용해 온 글꼴들은 우리나라 글꼴의 역사와 특징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특히 국내신문 사상 최초로 신문 전용서체를 공모한 것은 동아일보만의 독창적인 지면을 만드는 동시에 신문활자의 문화를 이끄는 기폭제였다. 그 이후에도 동아일보는 늘 한발 앞서 새 글꼴을 채용하고 글자 크기, 가로-세로 비율 등을 여러 차례 개선했다. 이같은 끊임없는 노력은 한국 신문들이 세련되고 가독성 높은 글꼴을 갖추는 데에 큰 자극제가 됐다.

최근의 글꼴 개선작업들이 기존 글꼴의 부분 수정이었던 반면 2003년 동아일보의 새 글꼴은 독자적이고 전면적인 개발이라는 점에 그 의미가 있다. 가로쓰기가 정착되어 가는 상황에서 신문활자의 문화를 또다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특유의 정체성 살려”

말에는 말투가 있다. 한마디 단어의 미묘한 억양에도 사람들의 반응이 민감하게 달라지지 않는가.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을 선형(線形)적이고 논리적으로 재현하는 게 문자다. 지면에서는 그 같은 문자의 시각적 차이가 말투에 해당한다. 이번 글꼴 교체작업을 통해 동아일보의 말투는 정말 많이 달라졌다.

동아일보의 새 글꼴은 그동안 가로쓰기를 위해 기울여 온 노력을 일단락한 데에 의미가 있다. 국내 정상의 글꼴회사와 함께 작업하면서 획을 정리하는 등 기존 글꼴이 안고 있던 과거의 흔적을 말끔히 털어버린 게 가장 눈에 띄고, 나아가 동아일보 글꼴만의 정체성을 살리려 노력한 점 또한 대단하다. 그만큼 타 신문의 글꼴들과 꼼꼼히 비교해볼 만한 장점이 많다.

요즘 시장에 가면 다양한 종류의 쌀을 볼 수 있다. 무공해쌀, 진상미, 이천쌀 등. 역시 밥맛은 쌀을 따라가는 법이다. 동아일보의 새 지면이 어떤 말투를 쓰는지, 어떤 글꼴로 지어진 조반인지는 독자들이 더 잘 구분해낼 것이다. 글꼴은 시대를 따라 흐르고, 좋은 지면계획과 함께 빛이 난다. 더 나은 동아일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와 관심이 필요하다.

송 성 재(호서대 교수·시각디자인)

●“새 글꼴에 더 많은 진실 담기를”

동아일보에서 새로 개발한 글꼴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거리에서 마주친 크고 조잡한 간판들이 그날따라 눈에 거슬렸다. 대∼한민국! 외치고 촛불로 바다를 만들어도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다. 광화문 거리의 간판이 변해야 궁극적으로 한국사회가 변할 것이다. 정권은 하루아침에 갈아치우면서 간판글씨는 왜 맨날 그 모양 그 꼴인가.

옛 체제와 새 체제로 만든 시험판 신문을 비교해 보았다. 새 글꼴이 훨씬 시원하고 현대적인 느낌이 났다. 글꼴 개선작업을 위해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고 내부 의견을 수렴하느라 1년이 소요됐다는 설명을 듣고 나는 놀랐다. 글꼴 하나 바꾸는 데 그처럼 엄청난 시간과 노동이 들어가다니(이 글을 쓰며 나는 대한민국의 모든 간판들을 용서한다). 사소한 일상의 변화에 오히려 사람들은 완강하게 저항하는데, 동아일보가 큰 결심을 했다.

언젠가 제호도 한글로 바꾸고 과감한 지면 혁신이 이뤄지길 바란다. 포장뿐 아니라 알맹이도 참신해졌으면. 새 글꼴이 실어 나를 글들이 더욱 공정해지고, 행과 행 사이에 한층 예리한 비판정신이 살아 숨쉬기를, 더 많은 진실을 담기를 감히 희망한다.

최 영 미(시인)

●달라진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