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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선거단속 헛손질

입력 | 2002-12-01 18:25:00


대선을 눈앞에 두고 불법 사이버 선거운동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경찰의 감시 시스템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효과적인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경찰은 경찰청 본청뿐만 아니라 각 지방경찰청 및 일선 경찰서에도 사이버 단속반을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단속 전담인원의 업무가 서로 나누어져 있지 않고 모든 인터넷사이트가 ‘공동경비구역’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주요한 사이트만 중복 감시되고 있다.

더구나 감시와 단속에 필요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도 없는 상태다. 특히 불법 게시물의 경우 단속 자체를 수사관의 ‘감’에 의존하거나 선관위와 검찰에 제각각 지휘를 받는 등 지휘체계가 복잡해 신속한 단속이 어려운 실정이다.

▽단속현황〓1일 서울의 일선 경찰서에 따르면 선거상황실 ‘사이버반’에는 경찰서당 4, 5명씩의 수사관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들은 대체로 자신의 컴퓨터 ‘즐겨찾기’에 각각 30∼50여개의 사이트를 등록시켜 놓고 있다.

감시대상은 대부분 한나라당과 민주당, 언론사 그리고 게시판 활동이 활발한 포털사이트 등이며 특별한 제보를 받는 경우에 한해 새로운 사이트의 게시판을 뒤져본다.

이 때문에 경찰청에 올라오는 내사보고도 중복되는 건이 상당수다. 일선 경찰서의 한 수사과장은 “실제로 최근 10여건의 중복사례가 있었다”며 “야후 네이버 등 가입자가 많은 사이트를 우선적으로 검색하다보니 현장을 포착해도 어느 경찰서에서 수사를 할 것인지에 대해 일일이 경찰청의 ‘교통정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른바 ‘메이저 사이트’가 아닌 곳에서 자행되는 불법선거운동은 사실상 조사대상에서조차 제외돼 있는 셈이다.

▽모호한 기준〓입건기준도 천차만별이다. 실제로 확인 결과, 경찰서별로 ‘내사착수’의 기준이 되는 비방글의 횟수는 경찰서별로 1인당 20∼50회, 심지어 150∼500회로 제각각이다.

서울경찰청 박주진(朴柱鎭) 선거상황실장은 “대선 후보 비방글의 경우, 횟수가 아닌 ‘질’이 입건의 기준”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비난의 수준을 규정한 선거법 82조 3항(컴퓨터와 통신을 이용한 선거운동)은 ‘후보자에 대해 허위의 사실이나 사생활의 비방에 이르는 내용을 게시하는 행위 금지’라고 포괄적인 내용만을 제시하고 있어 실제 수사여부는 수사관 개개인의 느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서울 일선 경찰서 사이버반의 한 수사관은 “상식이 판단기준”이라며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해도 사안마다 처리 지침이 다르다”고 말했다. 특히 “존경하는 △△후보께’로 시작되는 깍듯한 경어체의 글이나 ”퍼온글’이란 명목으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등 교묘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불법 선거운동의 경우에는 입건 여부를 결정하는 데 상당한 혼란을 빚고 있다.

▽복잡한 지휘체계〓경찰 수사에 대한 지휘 체계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선관위의 경우 사이트상에 ‘비방글’이 뜨면 바로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경찰은 그렇지 못하다. 또한 현행법상 사이버 선거사범 수사에 대해 경찰은 입건단계부터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하며, 검거를 위한 인터넷 주소(IP)추적을 위해 검찰의 허가를 받는 데도 2, 3일 소요된다. 따라서 PC방 등지에서 ‘치고 빠지기’식으로 비방글을 올릴 경우 입건과 검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경찰은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사이버 공간의 후보 비방 혐의로 400여건을 적발, 9명을 구속하고 5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