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통합21이 민주당과의 대선공조 문턱에서 제기한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론이 대선정국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단순한 개헌논의 차원을 넘어 집권 이후 권력운용에 관한 양당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민감한 사안인 데다 비슷한 방안을 내놓고 있는 제(諸) 정파와의 연대 고리로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합21▼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가 26일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에게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공약으로 수용토록 요구한 것은 대선 이후까지 염두에 둔 다목적 포석이다.
정 대표가 제기하는 개헌 시점은 2004년 17대 총선 직후인 만큼 분권형 대통령제가 집권 이후 당장 현실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통합21은 분권형 대통령제 공약을 통해 정-노 공조에 의한 정권이 단순한 ‘노무현 정권’이 아니라 정 대표의 중도보수 노선과 노 후보의 중도좌파 노선을 아우르는 ‘공동정부’를 지향한다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박범진(朴範珍) 기획위원장은 “진보 쪽에 상대적으로 기반이 많은 노 후보가 보수 쪽에 가까운 정 대표의 지지표를 끌어오기 위해서는 정 대표가 단순히 ‘유세위원장’ 정도의 역할에 머무는 공조여서는 곤란하다. 두 사람이 함께 균형을 이뤄갈 정권임을 알려야 선거에서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에는 노 후보와 엇비슷한 지지율을 가진 정 대표의 후보직 포기의 ‘대가’로 당연히 공동정부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도록 입지를 구축해야 한다는 당 안팎의 요구가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일각에서는 ‘나눠먹기’라고 매도할지 모르지만, 공동의 정책과 비전을 내걸고 집권한 정권의 주체들이 책임을 함께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며 “서유럽에서는 이 같은 연정(聯政)이 오히려 일반화된 형태 아니냐”고 반문했다.
통합21은 또한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론을 통해 비슷한 주장을 해온 민주당 이인제(李仁濟) 정균환(鄭均桓) 박상천(朴相千) 의원과 하나로국민연합 이한동(李漢東) 대통령후보 등 중도보수 노선의 중진들과 폭넓은 연대를 형성해나가려는 계산도 없지 않다.
정 대표는 이날 휴가 중인 강원 속초시와 강릉시에서 “노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을 것이냐”는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함구한 채 ‘2004년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거듭 강조해 일회적 요구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민주당▼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의 ‘2004년 권력분산형 개헌’ 제안에 대해 민주당측은 매우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자칫 후보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를 상쇄하는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민주당의 입장에서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은 ‘양날의 칼’인 셈이다. 정 대표의 제안을 수용하면 한나라당의 ‘권력 나눠먹기 야합’ 공세를 피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 민주당측의 고민. 반대로 정 대표의 제안을 거부하면 후보단일화로 화기애애한 기분에 젖어있는 공조분위기에 금이 갈 것이 뻔하다. 민주당측은 특히 이 문제가 정 대표의 선대위원장직 거부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측은 극도로 말을 아끼며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민주당측의 내심은 어차피 노 후보가 ‘2007년 권력분산형 개헌’을 공약으로 채택한 만큼 논의는 해 나가되 그 합의 시점을 대선 이후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노 후보 자신도 한나라당이 다수당인 16대 국회의 의석분포에 비추어 실현가능성이 불투명한 분권형 개헌을 대선공약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실제 노 후보는 26일 정 대표와의 회동에서 “정 대표는 2004년에 개헌을 하자고 했고, 나는 2007년에 하자고 했는데 이것이 무엇이 다르냐”며 반론을 폈다는 후문이다.
이날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나, 정세균(丁世均) 국가비전21 위원회 본부장이 “매우 중요한 내용인 만큼 당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어떻게든 대선 전에 약속을 받아내려는 통합21측의 의지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97년 대선 전에 이뤄진 DJP의 내각제 개헌공약도 파기되는 마당에 대선 후 개헌하겠다는 약속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게 통합21측의 입장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통합21측을 다독여 분권형 합의의 시점을 늦추면서도 원활한 대선 공조를 이끌어낼 묘안을 마련하느라 부심하고 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