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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기세상읽기]'경기이론'으로 北核 돋보기

입력 | 2002-11-01 18:14:00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해왔다고 시인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미 소형 핵폭탄을 몇 개 지녔거나 이내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사정은 현 정권에겐 당혹스럽고 햇볕정책의 효능을 믿어온 사람들에겐 실망스러웠을 터이다.

그러나 대결 상황을 전략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경기 이론(Game Theory)을 적용해보면, 북한으로선 핵무기 개발이 합리적 선택이었음이, 그래서 우리는 대비했어야 했음이 드러난다. 휴전 뒤부터 최근까지 한반도의 상황은 2인 비영합경기(Two-person Non-zero-sum Game)였다. 이런 경기는 양 당사자들이 경쟁하지만, 공동의 이익이 존재하는 상태다. 공동의 이익 덕분에, 양쪽의 득실을 합치면 0이 아니다. 그래서 비영합경기(Non-zero-sum)라 불린다.

이것에 대척적인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영합경기(Zero-sum Game)다. 6.25 전쟁 기간에 남북한은 한쪽의 이득이 상대의 손실인 2인 영합경기(Two-person Zero-sum game)를 했다.

비영합경기엔 비협력적 해결(Non-cooperative Solution)과 협력적 해결(Cooperative Solution)이라는 두 가지 해결 방안이 있다. 휴전 뒤 남북한은 별다른 협력을 하지 않고 군비를 증강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비협력적 해결이었다. 근년에 남북한이 추진한 화해 정책은 협력적 해결이었다.

협력적 해결의 두드러진 특질은 협력으로 얻어진 성과의 배분이 어렵다는 점이다. 성과의 배분에서 지침이 될 만한 것들이 없으므로, 양쪽의 협상력이 배분을 좌우하고, 그래서 협상은 늘 치열하다. 노사협상의 어려움과 치열함은 바로 이런 사정에서 나온다.

지금까지 북한은 남한보다 월등한 협상력을 보여왔다. 특히 허세(Bluffing)에 능해서, 연전의 불바다 발언에서 보듯, 전쟁 위협을 통해 성과를 훨씬 많이 가져갔다. 핵무기의 보유는 그런 허세의 효과를 폭발적으로 늘릴 터이다.

보다 현실적인 대북한 정책을 고르라는 주장에 대해 현 정권은 ‘그러면 전쟁을 하자는 얘기냐?’고 윽박지른다. 이런 주장은 적어도 두 개의 근본적 오류들을 안고 있다.

먼저, 그것은 북한의 위협에 무게를 더해서 우리의 협상력을 줄인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북한에 대한 비합리적 지원을 전쟁방지비용이라고 강변하는 모습은 보기 민망하다.

다음으로, 그것은 상황을 그릇 보았다. 북한에 대해 할말을 다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협력 성과의 배분에 영향을 미친다. 설령 북한이 크게 반발하더라도 남북한 사이의 관계는 비협력적 해결로, 즉 휴전부터 거의 반 세기 동안 이어진 상태로 돌아갈 따름이다. 결코 이인 영합경기로, 즉 전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전쟁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남북한 사이의 전쟁에서 첫 피해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일 터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실권은 군인들이 쥔다. 북한의 현 정권처럼 취약한 정권이 전쟁에서 권력을 유지할 길은 없다. 따라서 전쟁은 북한의 지도층이 가장 두려워한다.

이처럼 경기 이론은 정세 판단에 필수적이다. 실은 생물학과 사회과학 전반에 필수적이다. 경기 이론에 큰 기여를 한 존 내쉬(John Nash)의 비극적 삶을 다룬 책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승산)’ 덕분에 이제 경기 이론은 익숙한 말이 되었다. 비록 수학의 한 분야지만 일반 독자들을 위한 입문서들도 많다. 우리 저자들의 책들 가운데선 연세대 김영세 교수의 ‘게임이론:전략과 정보의 경제학’(박영사)을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