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순 할머니(왼쪽)과 정남희씨
“여울이의 재롱을 아버지가 꼭 한 번만이라도 보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유인자(柳仁子·61·부산 연제구 연산동)씨는 4일로 두 돌을 맞은 손녀 여울이를 볼 때마다 아버지 유열(柳烈·84·전 김일성대 교수)씨를 떠올린다.
북한 국어학계의 태두인 아버지가 직접 이름 지어주신 여울이. ‘남과 북의 모든 마음을 담은 크고 작은 시냇물들이 여울목에 다다라 깊은 강과 넓은 바다를 향해 흘러간다는 뜻’을 담고 있는 여울이의 이름에는 통일을 염원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확대한 아버지 사진들을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두고 매일 들여다보는 유씨는 아버지를 만난 것이 생애 가장 큰 ‘선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2년 전 한반도를 온통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8·15이산가족 상봉’. 이후 이산가족들은 반세기만에 만난 가족들에 대한 생생한 기억과 소중한 ‘선물’을 간직한 채 다시 만날 그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북한의 대표적 인민예술가인 정창모(鄭昶謨·70)씨의 여동생 정남희(鄭南姬·55·전북 전주시 효자동)씨는 오빠를 만난 이후 그리움이 더 커졌다.
네 살 때 헤어져 오빠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었지만 막상 오빠를 만나고 나서는 6개월가량 우울증에 시달릴 정도로 오빠 생각이 간절했다. 정씨는 오빠에게서 받은 국화그림을 옷장 깊숙이 넣어두고 오빠가 보고싶을 때마다 조심스레 꺼내 한참을 들여다 본 뒤 다시 넣어두곤 한다.
나날이 쇠약해져 가는 고령의 이산 가족들도 마음 속에는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있다.
109세 최고령자로 꼽혔던 어머니 구인현(具仁賢)씨와의 상봉을 고대하다 어머니가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혼절해 온 국민을 안타깝게 했던 장이윤(張二允·73·부산 중구 영주동)씨의 하루는 매일 아침 인근 구덕산을 오르는 일로 시작된다.
“건강해야 나중에 어머니 산소에 절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어….”
아무 것도 바라는 게 없다고는 하지만 혹여 성묘라도 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갖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생사조차 알 길이 없었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조주경(趙周璥·70·김일성대 교수)씨를 만난 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좋은 날’을 기다리며 부산 서구 서대신동 내원정사에서 홀로 세월을 이겨내고 있는 신재순(申在順·90) 할머니 역시 마찬가지.
신 할머니는 “지난해 북에 갔다온 사람이 ‘오래 사시면 통일이 되는 날 모시러 가겠습니다’는 아들 편지를 가지고 왔더라”며 마른 눈물을 훔쳤다.
“만날 당시에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지. 그런데…”라며 말을 잇지 못하는 신 할머니는 불공을 드린 지 20년 만에 아들을 만난 것처럼 바람이 간절하면 통일이 이루어지리라 믿고 두 손을 꼭 모은다.
신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엔 통일에 대한 희망과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부산〓조용휘기자 sile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