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위기에 직면한 독일 최대의 미디어그룹 키르흐의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큰 싸움판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29일 세계 최대의 언론재벌인 루퍼트 머독과 이탈리아 최대의 언론재벌이자 현직 총리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경영권 인수 경쟁을 벌이고 있고 싸움을 중재하기 위해 사우디의 큰손 알 왈리드 빈 팔랄 왕자가 개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이탈리아 총리에게 자국의 미디어 기업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의 자존심까지 가세돼 키르흐 경영권 다툼은 국제적 현안으로 번지고 있는 것.
키르흐 그룹은 독일 최대의 공중파 방송인 프로지벤새트원(ProSiebenSAT.1)의 지배주주이자 유럽 최대의 영화 및 TV 프로그램 저작권 보유 기업이며 독일의 최대 일간지 빌트의 주주.
그러나 미국의 영화제작사들에게 할리우드 영화의 저작권료를 과다하게 지불키로 한 계약이 화근이 돼 현금 흐름이 경색되면서 파산 위기에 몰리고 있다. 키르흐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최소한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가 필요한 상태.
이미 키르흐에 자금을 투자한 머독씨의 뉴스 코퍼레이션과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미디어세트는 추가 자금 제공을 지렛대로 경영권을 차지하려고 경합을 벌이고 있는 것. 파이낸셜타임스는 “두 사람의 치열한 경합 때문에 키르흐의 회생 협상이 지체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자 키르흐의 또 다른 투자자인 왈리드 왕자가 분쟁 조정에 나섰다. 왈리드 왕자 소유의 킹돔 홀딩스는 뉴스코퍼레이션의 세 번째로 큰 투자자인 동시에 미디어세트에도 2.3%의 지분을 갖고 있는 주요주주.
왈리드 왕자는 키르흐의 채권자인 대형 은행들에 맞서 투자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단합이 중요하기 때문에 중재에 나선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아직 경영권의 향방이 불투명한 가운데 슈뢰더 총리가 키르흐의 경영권이 베를루스코니 총리에게 가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독일의 미디어 분야에서 영향력을 보유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머독씨에 대해서는 “할말은 따로 없다”면서도 “그가 영국에서 거둔 성공에 비춰볼 때 반대할 수는 없다”고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누가 경영권을 갖든지 키르흐는 독일 굴지의 미디어 그룹 경영권이 외국에 넘어가는 최초의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