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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엑스페리먼트', 인간은 얼마나 추악할 수 있을까

입력 | 2002-03-21 17:36:00


독일 영화 ‘엑스페리먼트’(Das Experiment·실험)는 인간 본성을 탐구하려는 심리학 실험을 소재로 했다.

택시운전사, 신문가판대 주인, 교사 등 평범한 남자 20명은 각각 4000마르크(240만원)를 받는 댓가로 진짜와 똑같은 모의 교도소에서 2주일간 간수와 죄수 노릇을 하게 된다. 연구팀이 정해준 실험의 원칙은 단 한가지. 폭력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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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실패한 실험

▽1일째〓8명의 간수와 12명의 죄수들은 아직 감옥보다는 사회 분위기에 익숙함. 우유를 못먹는 동료 대신 남은 우유를 마셔준 77번 죄수가 가벼운 벌을 받음.

▽2일째〓우유는 죄수와 간수의 힘겨루기 문제로 비화. 간수들은 ‘힘’을 보여주기 위해 죄수들의 옷을 벗기고 모욕을 줌. 실험 36시간 만의일.

▽3일째〓간수들을 조롱하던 77번, 간수들에게 집단 구타당하고 강제 삭발됨. 간수들, 권력의 맛을 알기 시작.

▽4일째〓1명은 불안증세로 실험 탈퇴, 1명은 히스테리 증세 보임.

▽5일째〓죄수들, 권력에 완전히 굴복. 간수의 곤봉에 맞아 1명 사망. 실험 110시간만에 살인 발생.

▽그후…〓통제 불능 상태. 모든 게 엉망이다!

#미완성의 실제실험

이 영화는 1971년에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악명높은 ‘스탠포드 감옥 실험’을 토대로 했다. 당시 스탠포드대 필립 짐바르도 박사가 주도한 이 실험은 영화처럼 참가자를 공개 모집한 뒤 모의 감옥에서 간수와 죄수 역할을 시켰다. 그러나 실제 실험은 영화와 달리 살인은 없었지만 수감자들의 심리와 불안 간수의 폭력적 태도로 6일만에 미완성으로 끝났다.

#그러나 성공한 영화

영화 속의 실험은 실패했으나 영화 ‘엑스페리먼트’는 관객이 불편해할만큼 인간의 본성을 들춰내는데 성공했다. ‘엑스페리먼트’는 인간의 권력욕, 힘의 역학관계, 잠재된 폭력성, 사악함 등을 집요하게 파고 든다. 모범 항공사 직원에서 곤봉과 호루라기를 갖게 된 뒤 악질 간수로 변하는 베루스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추악한 면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 영화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까지 던진다. 영화에서 실험을 시작하고 24시간 관찰하는 박사는 피실험인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다. 베루스는 지나친 폭력에 두려움을 느낀 동료가 “규칙대로만 해”라고 하자 이렇게 대꾸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반응을 보이는게 박사님이 정해준 규칙이야”. 이 말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 의지에 대해 한번쯤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105분의 상영시간(죄수들의 성기 노출 장면 때문에 9분 가량 잘렸다) 내내 긴장을 유지해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에도 불쾌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 것은 상영 내내 대면해야 하는 ‘인간 본성’ 탓인 걸까. 올리버 히르쉬비겔 감독은 이 영화로 지난해 몬트리올 국제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18세 이상 관람가.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