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가 범죄 혐의에 대한 상당한 ‘소명’ 이라는 기존 구속요건은 국가권력의 ‘횡포’ 라고 주장하면서 인신구속은 남발하면서 정작 판결내용은 가벼운 기존 형사재판 관행을 비판하고 나섰다.
윤남근 서울지법 형사4단독 판사는 19일 열린 형사실무연구회에서 ‘불구속재판의 실천적 과제’ 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영장실질심사제도가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구속을 형벌로 보는 경향이 여전하다” 고 지적했다.
윤판사는 “구속을 형벌 수단으로 이용하면 재판도 하기 전에 형이 집행되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고 형사소송법의 근간인 무죄추정의 원칙, 당사자주의, 공판중심주의가 유명무실해진다” 고 비판했다.
윤판사는 “‘범죄혐의의 소명이 상당할 때’ 라는 구속 요건은 죄를 지었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데 불과한 사람에 대한 국가권력의 횡포이자 인간 존엄에 대한 도전” 이라며 “지난해 구속된 14만여명 중 무죄나 면소(免訴), 공소기각 등으로 석방된 1100여명은 형벌의 일환으로 구속해선 안될 사람들이었다” 고 지적했다.
그는 “죄가 입증되지 않은 사람을 장기간 구속하고 자백이나 피해자와의 합의 등이 없으면 보석도 허가하지 않아 사실상 자백을 강요하고 구속기간에 쫓겨 충분한 심리도 못하는 조건을 조성한 판사가 중형 선고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며 “구속된 사람 대다수가 낮은 형을 선고받는데는 기존 구속제도가 한 몫 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합의가 만능인 형사재판 관행은 피해자가 피고인의 불리한 처지를 악용하거나 피고인이 합의를 위해 피해자측을 협박토록 할 수 있고 민사사건의 형사화를 초래한다” 며 “보석보증금을 내고 석방되는 것은 피고인의 권리이지 판사의 시혜가 아니므로 요건을 갖춘 피고인은 반드시, 조속히 보석을 허가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그는 “구속된 사람의 90% 가량이 선고전 구금 형태로 사실상 단기실형을 받고 있는데도 판사들은 정작 단기실형 선고를 극히 꺼리는 자가당착을 보인다” 며 “불구속재판이 확대되는 가운데 집행유예를 남발하면 가뜩이나 낮은 형량이 문제인 터에 불구속재판 자체가 심각한 도전을 받고 국가형벌권이 약화될 수 있다” 고 지적했다.
윤판사가 주제발표를 한 형사실무연구회는 이용우 대법관을 회장으로, 재조와 재야 법조계, 학계 등 인사들로 구성된 형사재판 관련 연구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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