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올 9월 택시요금을 인상하면서 서비스 개선을 위해 시내 택시 7만대 전체에 영수증 발급기와 외국어 동시통역 시스템 설치를 완료하고 1일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본보 취재진이 이날 확인한 결과 대부분의 택시 운전사들은 기기 고장 등을 이유로 요금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았고 영수증을 요구하는 승객도 거의 없어 ‘영수증 발급제’가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상당수 택시들에 외국어 동시통역 시스템이 설치돼 있지 않았고 이를 갖춘 택시도 제대로 통역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오전 독립문 사거리에서 광화문까지 운행한 개인 택시 운전사에게 영수증을 요구하자 운전사는 “한달 전 17만원이나 들여 기기를 설치했는데 고장났다”며 발급을 거부했다.
또 취재기자가 마포구 성산동에서 서울시청까지 개인택시에 합승한 뒤 영수증을 달라고 요구하자 운전사는 “합승하면 영수증을 못 주는데…”라며 머뭇거리다 실제 요금(7000원)과 다른 엉터리 영수증(8000원)을 끊어줬다.
이 택시 운전사 이모씨(40)는 “영수증 발급기를 설치한지 한달이 넘었지만 국내 승객 중 영수증을 요구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며 오히려 영수증 요구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외국어 동시통역 서비스도 엉망이었다.
취재진이 이용한 10대의 택시 가운데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일어 등 4개 외국어 동시 통역 시스템을 갖춘 택시는 6대였다. 그러나 실제 동시 통역에 성공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외국인 승객이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 광화문까지 모 법인 택시를 타고 프랑스어 통역을 부탁했으나 운전사는 “그런 게 있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또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광화문까지 개인택시를 이용하면서 “일어 통역이 되느냐”고 물어보자 운전사는 통역기 단말기에 있는 9개의 단추 가운데 ‘일본어’라고 적힌 단추를 눌렀다. 그러나 일본어 지정 교환원과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 시스템은 외국인 승객 등이 통역을 요구할 경우 운전사가 택시 내에 있는 스피커폰을 이용해 통역이 가능한 지정 교환원에게 전화를 걸어 이들 3명이 대화를 하도록 돼 있다.
전문가들은 ‘영수증 주고받기’를 생활화하고 외국 관광객들을 위해 택시 운전사들이 동시 통역기를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녹색교통 민만기 사무처장은 “택시 영수증 발급이 정착되면 택시 운행 실적이 정확히 기록돼 탈세를 막을 수 있고 영수증에 차량 번호와 승하차 시간이 나오므로 불친절한 기사를 신고하거나 분실물을 찾기 쉬워져 택시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10일까지 시내 61개 자동차 가스충전소 출입 택시들을 중심으로 영수증 발급기 등의 설치와 작동 상태를 지도 점검한 뒤 12일부터 집중 단속을 실시할 방침이다.
시는 영수증 발급기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 과징금 20만원을, 영수증 발급을 거부할 경우 영업정지 5일의 행정처분을 부과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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