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파를 차폐하기 위해 은 장판이 깔린 방에서 은으로 만든 옷을 입고 은으로 만든 컴퓨터 모니터를 볼 날이 멀지 않았다.
동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를 현실로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나노테크놀러지. 한양대 오성근 교수(화학공학과)는 지난달 29일 열린 한국공업화학회 도료도장 기술 심포지엄에서 은 입자를 나노미터(㎚, 10억분의 1m) 크기로 만들어 페인트나 필름, 섬유에 넣어 전자파를 차폐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전자파를 차폐하는 것은 전기가 잘 통하는 물질을 이용해 마치 피뢰침을 통해 번개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전자파를 뽑아내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보통 99.9∼99.99% 정도의 전자파 차폐율을 요구한다. 전기저항이 작을수록 전기가 더 잘 통하는데 전기저항이 1옴 이하면 이 정도의 전자파 차폐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은 전기저항이 10-2옴밖에 되지 않아 전자파 차폐에 그만이다. 최근 판매되고 있는 은 장판은 바로 은 입자를 포함하고 있는 페인트를 칠한 것이다.
그러나 은은 가격이 비싼 단점이 있다. 오 교수는 이 문제를 은 입자의 크기를 줄임으로써 해결했다. 입자를 나노미터 크기로 작게 만들면 같은 질량이라도 입자수가 훨씬 많아지기 때문에 표면적이 증가한다. 그 결과 같은 물질이라도 10㎚ 크기일 때가 1㎛(100만분의 1 m) 보다 전기를 6배 정도 더 잘 통한다. 또 기존의 전자파 차폐 페인트에 나노 은 입자를 넣으면 원래의 은 입자 사이에 있는 빈 공간을 메워 전기를 더 잘 통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의 방법으로는 입자의 크기를 0.1㎛ 이하로는 할 수 없다. 오 교수는 화학 반응을 통해 은 원자를 벽돌처럼 쌓아 가는 방법을 이용해 이 한계를 돌파했다. 이렇게 만든 나노 은 입자를 실을 뽑을 때 원료와 함께 섞어주면 전자파 차폐 옷감을 만들 수 있다. 또 컴퓨터 모니터에도 이용할 수 있는 투명 전자파 차폐 필름을 만들 수도 있다.
오 교수는 27일 섬유공학회 하계 심포지엄에서 이와 같이 나노 입자를 활용한 기능성 섬유에 대한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나노 은 입자는 살균제로도 이용될 전망이다.
은 이온은 미생물의 세포 표면을 뚫고 들어가 결국 죽게 만든다. 이미 고대 이집트에서 은을 물에 넣어 신선도를 유지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도 황산은이 세균감염을 막거나 신생아의 눈을 보호하는 약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역시 가격 때문에 일반 살균제로는 사용하지 못했다. 이 문제 역시 나노 은 입자면 해결된다. 오 교수는 “기존의 은 입자로 살균제로 만들 때 원료비가 10만원 정도 든다면 나노 은 입자는 1000원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연구팀은 현재 나노 은 입자를 식품이나 화장품용 방부제로 응용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으며 나노 은 입자 수용액을 뿌릴 수 있는 스프레이는 시제품을 개발한 상태. 오 교수는 “신발에 이 스프레이를 뿌리면 무좀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꿈의 기술인 나노테크놀로지가 실제 생활에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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