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댐 건설을 백지화시켰을 때 많은 사람이 쾌재를 불렀다. 낙동강 수계의 5개 댐 건설계획도 환경단체 및 주민들의 반대로 모두 백지화되었다. 그러나 올해 혹심한 가뭄을 겪고 나자 댐을 더 만들겠다는 정부의 발표에도 시민단체들은 잠잠했고 이제 집중호우로 피해까지 당했으니 정부 계획은 더욱 자신이 붙게 되었다.
국가 대사가 민원과 천재지변에 의해 좌우되지 않으려면 설득력 있는 기본계획부터 세우고 이를 차질없이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대부분의 기본계획이 유명무실하거나 단순한 건설계획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6대 도시가 모두 운영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지하철을 건설하여 빚더미에 올라앉았으며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국도로공사는 2020년까지 고속도로를 2000㎞에서 6000㎞로 확장하겠다고 한다.
설득력 있는 계획을 세우려면 정부가 깊은 전문지식과 기술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 내에는 전문가도 없고 축적된 정보도 없다. 국제학술대회 발표자들은 대개 학계, 정부, 업계로 3등분되는데 한국의 관료들은 발표석은 고사하고 방청석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전문가와 대화할 정도의 용어라도 아는 관료도 없어 전문가와의 교류를 기피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 내에 전문가가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순환보직으로 전문지식을 축적할 기회를 차단하고 외부로부터의 전문가 영입에도 등한해왔기 때문이다. 반면에 전문가들은 자발적으로 시민단체에 참여하므로 정부가 이들을 논리로 이겨내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시민단체들이 시민의견을 대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가의 주요 사안에 참여해 결정을 좌우하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부는 왜 전문가를 기피할까? 모든 공무원을 상부 지시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지휘하고 싶은 것이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정치논리에 의해 국사를 처리하려고 할 때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 드는 전문가보다는 맹종하는 부하직원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몇 년 전 여름 한강에 홍수가 한창일 때 수문을 언제 열어야 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던 적이 있다. 수문을 여는 작업은 정확한 분석과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오랜 경험과 컴퓨터를 동원한 시뮬레이션에 의해 결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당연히 전문가가 할 일이다. 그러나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일반 행정직이 결정권을 가진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일이 있다.
이렇게 전문분야의 일까지 정치적으로 결정하다 보니 전문가들은 좌절하거나 순발력만 키워 상관에 맹종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요즘은 전문가들조차 자신의 분야 하나만 쫓아가기도 힘들 정도로 발전하는 세상이다.
선진국 진입을 꿈꾸는 한국이 전문가 없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들조차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것 같아 나라가 어디로 갈지 걱정이다.
신부용(교통환경연구원장)btshin@terit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