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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이수곤/'절개지' 안전문제 심각하다

입력 | 2001-07-16 00:25:00


대도시에 가용 택지가 부족해 산지를 개발해서 택지와 도로로 만드는 경우 불가피하게 산을 깎을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수많은 절개지가 건설되고 있는 실정이다. 절개지는 바로 밑에 주택들이 있으므로 철저하고도 안전한 건설이 필수적이지만 관련 당국의 인식부족과 제도 미흡으로 허술하게 건설되는 경우가 많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에는 교량과 터널 같은 구조물에 대해서는 보다 철저한 감독과 주기적인 안전점검을 제도화하고 있으나 절개지는 자주 붕괴하고 인명피해도 많은 데도 불구하고 법적 관리대상에서 빠져 있다.

대도시 절개지는 한곳에서 일관되게 관리하지 않고 절개지가 도로 옆이면 도로과, 주택 옆이면 주택과, 산지 옆이면 공원녹지과에서 관리하고 있다. 또한 구청별로도 나눠서 관리하므로 위험한 절개지 현황을 체계적으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도시에서의 부실한 절개지 건설과 관리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2년 전 적지 않은 인명피해와 90억원의 복구비가 들어간 부산 황령산 절개지 붕괴사고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 후에 지방도시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절개지에 대한 안일한 인식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최근 서울에서는 높이 30m, 폭 50m의 가파른 절개지 거의 바로 밑에 50여 가구가 있는 곳에서 2년 전 폭우시 붕괴된 절개지를 정부 주관으로 수억원을 들여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시추조사를 한 곳에서 그나마도 5m 깊이까지만 하고 그 하부 25m는 지반상태를 정확히 모른 채 추정해서 다시 땅을 깎는 설계를 했는데 추가 보완이 안되면 3차 공사까지도 우려되는 실정이다. 이런데도 산지를 깎는 공사를 조경분야 공무원이 감독하므로 전문성 부족으로 지질 조사와 공법 선정이 제대로 됐는지를 잘 판단하지 못하고 공사가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서울 강남에서는 1400명이 다니는 초등학교 내에 폭 250m, 높이 25m의 가파른 절개지가 6년 전에 완공됐으나 3년 전 폭우로 부분적으로 붕괴돼 시추조사를 한 곳만 하고 2차로 보강한 적이 있다. 그러나 최근 학생들의 민원 제기로 13군데서 깊이 25m의 정밀 시추조사와 내시경 카메라로 파악해 보니 전체적으로 지반이 위험해 수십억원이 들어가는 3차 보강공사가 시급한 것으로 판단됐다. 정부 감독 하에 있는 공사도 이런 실정인데 최근 산지에서 활발한 민간 재개발아파트는 정부의 관리감독 밖에서 방치되고 있으므로 건설 허가 때 사전 기술검토를 제도화해야 한다.

그리고 절개지를 깎은 후에 표면을 조경 목적에서 식생을 하므로 표면이 덮여서 어느 절개지가 안전한지 위험한지를 판단할 수 없다. 시공 후 최종 깎은 면에서 지질상태를 다시 정밀조사해서 그 근거자료를 남겨두도록 제도화하면 절개지 건설 후 유지 관리에 효율적으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붕괴시 책임소재를 가릴 수 있는데도 서울시의 인식 부족으로 중요한 자료가 사장되고 있다.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큰 사고가 또 발생해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이수곤(서울시립대 교수·토목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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