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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식의 과학생각]북한 정보화의 딜레마

입력 | 2001-03-07 18:42:00


1984년 세계 언론은 소련과 정보기술의 관계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묘사된 권위주의 체제가 소련 정권과 흡사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빅 브라더는 텔레스크린이나 도청장치를 이용해 대중에게 이데올로기를 강요한다. 그러나 서방세계의 예상과는 달리 소련에서 사회 통제를 위해 정보기술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제정 러시아 때부터 맹활약한 비밀경찰만으로도 정치적 반대자를 제압하는데 충분했기 때문이다.

▼김위원장 정보기술 거듭 강조▼

소련 정권은 이데올로기를 위해 정보기술을 외면할 수 없었다. 컴퓨터를 활용하지 않을 경우 2류 국가로 전락해 공산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하는데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84년, 러시아혁명 직후의 대대적인 까막눈 퇴치 캠페인에 버금가는 규모로 컴퓨터 교육을 실시할 것임을 선언했다. 6만여개의 전국 고등학교에 1990년까지 100만대의 퍼스널 컴퓨터를 설치해 컴퓨터 문맹을 없애려는 계획이었다.

그 당시 복사기에도 열쇠를 채웠으며 불법으로 복사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최고 7년까지 징역형을 살렸다. 컴퓨터로는 불온문서 따위를 당장 찍어낼 수 있다. 이처럼 정보기술이 사회 안전의 유지에 큰 부담이 됨에도 불구하고 소련 당국자로서는 컴퓨터의 개인적 사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01년 1월 한국 언론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상하이(上海) 방문을 대서특필했다.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콤퓨타’(컴퓨터의 북한식 표현) 등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북한 사회주의 헌법 제27조는 “국가는 언제나 기술발전 문제를 첫 자리에 놓고 모든 경제활동을 진행하며 과학기술 발전과 인민경제의 기술 개조를 다그치고 대중적 기술혁신 운동을 힘있게 벌여 근로자들을 어렵고 힘든 로동에서 해방하며, 육체 로동과 정신 로동의 차이를 줄여 나간다”고 규정하고 있다. 요컨대 기술혁명은 사상 및 문화혁명과 함께 북한이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3대 혁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근 일본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김위원장이 인민경제의 컴퓨터화 실현에 관련된 친필 지시를 4개월 동안 18번이나 보냈다고 보도했다. 북한에서 정보기술 도입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남한에서는 남북 경제협력을 선두에서 이끌 분야로 정보기술을 가장 먼저 꼽는다. 남한의 정보기술업계가 북한과의 협력에 관심을 갖는 첫번째 이유는 북한 정보기술 인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소프트웨어 기술은 애니메이션 음성인식 보안 분야에서 탁월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인 해커를 양성하기 위해 지능지수 150 이상의 열두세살짜리 영재들을 특별교육시킨다는 말도 있다. 미국 국방부에서 가장 해킹을 많이 하는 나라로 북한이 손꼽힌다는 루머까지 있을 정도이다. 그밖에도 세계 컴퓨터 바둑대회에서 연속 우승한 ‘은바둑’, 워드프로세서인 ‘창덕’이 유명하다. 은바둑과 창덕은 5월 초 평양에서 개최되는 ‘평양국제전시회’에 출품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에는 소프트웨어 전문인력이 10만명 가량 있지만 제대로 일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은 5000명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북한의 인건비가 남한의 10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므로 남북경협의 유망분야로 꼽히고 있으나 미국 일본 등이 북한의 소프트웨어 인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소프트웨어 기술 수준에 비해 정보기술 인프라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사회통제 풀기전엔 어려워▼

2000년 말 현재 인터넷 사용 인구는 남한이 1900만명을 웃도는 반면에 북한은 극소수로 추정된다. 퍼스널 컴퓨터 보급대수는 남한이 1300만대를 상회하지만 북한은 10만대 수준이다. 요컨대 디지털 격차가 천문학적인 규모이다. 남한에서 하드웨어를 지원하려고 해도 바세나르 협약 때문에 불가능하다. 북한 등 이른바 테러지원국에는 민간용과 군용으로 함께 사용될 수 있는 이중 용도 품목의 반출이 금지돼 있다.

북한에서는 만사가 이데올로기와 연관된다. 이데올로기는 정보기술의 근본인 데이터에까지 침투해서 검열 왜곡 조작한다. 정보의 흐름이 막힌 사회에서 정보기술이 발전할 까닭이 없다. 김위원장이 풀어야 할 딜레마라 하겠다.

(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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