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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진단]'경마장 백지화' 경주시민 화났다

입력 | 2001-02-16 18:39:00


8일 경주경마장 건설계획이 백지화된 이후 30만 경주시민들의 반발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문화재보호법에 묶여 50여년 동안 사유재산권을 침해당해온 주민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그동안의 불만을 한꺼번에 분출시키고 있는 것.

147개 지역사회단체로 구성된 ‘경주경마장건설사수 범시민추진위원회’(경사추)는 ‘경주는 죽었다’ ‘굶어서 죽느니 싸워서 죽자’는 현수막과 조기(弔旗)를 시내 곳곳에 내거는 등 대정부 투쟁을 선언하고 나서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의 분위기는 무척 살벌하다.

▽경위〓92년 말 실시된 대통령선거 때 김영삼(金泳三) 당시 신한국당 후보는 경주역 유세에서 경마장건설을 공약한데 이어 94년 3월 한국마사회는 경마장을 96년에 착공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부터 경마장건설예정지에서 신라시대 유물 3600여 점이 출토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 이후 문화재 보존여론에 밀려 경마장건설계획이 표류하자 시민단체들은 ‘경사추’를 만들어 시민서명운동을 벌이는 한편 대규모 시민궐기대회를 개최하는 등 현 정부에 조기착공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는 8일 경마장 부지의 일부를 사적(史蹟)으로 지정키로 결정, 경마장 건설은 물 건너갔다.

▽주민 반응〓경마장건설이 무산되자 주민들의 반발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상효 경사추 공동대표는 12일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를 방문, “밀실결정을 절대로 승복할 수 없다”며 “경주의 문화재는 우리가 지킬 테니 모든 업무를 경주시에 넘기고 3월15일까지 경주를 떠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물천리 주민 김모씨(45)는 “경마장이 들어선다고 해서 160여가구가 8년 동안 집에 비가 새도 고치지 않고 기다려 왔는데 이 무슨 날벼락이냐”며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6공화국은 제멋대로 발표하고 문민정부는 이를 활용해 먹었으며 국민의 정부는 문화재 보호를 핑계로 대국민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쳤다”고 분노하고 있다.

경주시민들이 경마장 건설에 집착하는 이유는 50여년 동안 문화재보호법에 묶여 침해당한 재산상의 불이익을 보상받고, 마권판매수익으로 열악한 경주시의 재정자립도도 높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것.

한편 이원식(李源植)경주시장은 16일 “유물의 이전복원이나 전시관 건립을 통해 유물을 보존할 수 있으며 부지추가매입이나 설계변경으로 사적지를 훼손하지 않고도 경마장 건설이 가능하다”며 “사적지정취소를 위한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시장은 9일 민주당을 탈당했다.

이의근(李義根)경북지사도 이날 “정부를 상대로 이의신청이나 청원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ha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