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까지 촬영하고 주일날 인터뷰하러 다니고, 너무 힘들어요."
요즘 한창 인기 상승세를 타고 있는 신인 소유진(20). 그녀는 만나자마자 "자고 싶어요"라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빨갛게 충혈된 눈과 푸석푸석한 얼굴을 보면 괜한 허풍은 아닌 것 같았다. 방송 활동을 시작한지 이제 6개월 남짓. 드라마에서 제대로 된 배역을 맡은 것은 얼마 전 끝난 가 처음이다. 냉정히 말하면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새내기이다.
그런데 요즘 소유진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다. 오는 7일부터 방송을 시작하는 MBC 미니 시리즈 에서 여주인공 마시내 역에 캐스팅됐고, 지난 1일부터는 경인방송(iTV)의 진행을 맡았다. 이것만 해도 신인으로는 정신이 없는 처지에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선 연일 출연 섭외가 들어온다. 신인답지 않은 배포와 넉살, 붙임성을 두루 갖춘 '타고난 패널'인 그녀를 오락 프로그램의 PD들이 그냥 두지 않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올해 상반기 최고의 유망주라며 각종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도 쏟아지고 있다. 그동안 신문을 비롯해 10여개가 넘는 잡지와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갑자기 인기를 얻자 본인도 때론 얼떨떨한 모양이다. "어떤 때는 '내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구나'라고 잡지나 신문을 보고 알 정도에요. 드라마 한 편 하고 이렇게 바쁘니, 저보다 더 유명한 스타들은 정말 힘들겠어요."
아무리 연예계가 '눈만 뜨면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 곳이라지만, 이제 드라마 한 편을 겨우 끝낸 신출내기 연기자에게 이렇게 관심이 높은 것은 왜 일까?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아직 얼굴에 젓살도 채 빠지지 않았는데….
드라마 PD들은 그녀에게 다른 여자 연기자에서는 볼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한다. "대개 여자 스타들은 공주 기질이 엿보이는 신비로움을 내세우는데 소유진에겐 그런 거리감이 없다. 마치 고교시절의 같은 반 친구를 보듯 편하다. " KBS의 한 드라마 PD는 "처음 보는 사람도 한번 말을 걸고 싶은 친근함과 신선함을 동시에 지닌 것이 강점"이라고 칭찬한다.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SBS 드라마 에서 그녀가 맡은 엄순경 역을 보자. 신입 사원인 그녀는 극중에서 매사 당돌하고 다부지다. 어지간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을 정도로 배포도 있다. 말도 시원시원하고 성격도 그늘이 없이 밝다.
여자가 이런 모습이면 으레 우리는 '선머슴아 같다'는 표현을 붙인다. 하지만 소유진이 연기하는 엄순경은 결코 '선머슴아'는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마음을 열 때까지 내색 않고 기다리는 순정도 있고,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애교와 응석도 부릴 줄 안다.
한 마디로 사내같은 털털한 기질과 여성스런 사근사근함이 공존한다. 소유진의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처럼 기존 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나올 때 '절대 예쁜 척 하지 말자'고 다짐했죠. 왜, 드라마에서 여자 신인들이 별 것 아닌 대답을 할 때도 괜히 눈 크게 뜨고 또렷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는 모습들 있죠. 예쁜 얼굴도 아닌데 그렇게 억지로 눈길 끌고 싶진 않았어요."
본인 스스로 '예쁜 얼굴이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통통한 볼살과 붙임성 있는 웃음이 돋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오히려 보는 이가 질리지 않는 편안한 매력이 있다. 어른들에게는 귀여운 딸을 연상케 하고, 10대 시청자에게는 반에서 매일 보는 학교 친구 같은 편안함.
늘 안방극장의 시청자를 접해야 하는 연기자로서는 후천적으로 얻을 수 없는 타고난 복일 수도 있다.
그녀가 처음 방송가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해 SBS 에서 리포터로 활동하면서. 개그맨 김경식과 함께 각국의 진기한 음식문화를 탐방하면서 그녀는 여자들이 싫어하는 뱀이나 박쥐 고기 등을 거리낌없이 먹어 화제가 됐다. 요즘 언론이 붙여준 '엽기소녀'란 별칭도 이때의 모습 때문에 나왔다.
"원래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지만 그래서 마냥 먹었던 것은 아니에요. 박쥐를 먹었다고 놀라는데, 박쥐를 있는 모습 그대로 먹은 것도 아니고, 요리한 고기를 먹었을 뿐인데요. 무엇보다 제가 거기에 간 목적이 그런 음식문화를 소개하는 것이고, 그 곳 사람들이 즐겨 먹는데 리포터로서 마다할 이유는 없잖아요." 이제 갓 20살을 넘긴 어린 나이(81년생)지만 의외로 일에 대한 프로근성도 대단하다.
강단이 있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드라마 못지 않게 실제 성격도 시원시원하다. 내숭떠는 것 싫어하고 낙천적이다. 하지만 한번 화나면 끝장을 보는 화끈한 면도 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만 싫은 것과 좋은 것에 대한 구분이 명확해요. 고집도 세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잘 타협을 하지 않아요. 원하는 것을 기다리기 보다는 되든 안되는 직접 나서는 타입이죠."
뭔가 남과는 다른 것을 하고 싶어 계원예고에 지원해 연극을 전공했고 현재 동국대 연극영상학부 1학년에 재학중이다. 보기는 재미있지만, 연기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엄순경 역을 무난히 소화할 수 있었던 것도 고교 시절부터 연극 무대를 섰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대학 1학년 때는 방송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던 시절이라 열심히 공부도 하고 방학때 연극 무대도 섰다. 하지만 2학년에 진학하는 올해는 방송과 학교 공부를 병행할 일이 걱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결코 휴학은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학점을 못 따 남보다 학교를 몇 년 더 다닐망정 강의 다 듣고 시험 제대로 다 보고 졸업할 거에요."
그녀가 이처럼 공부에 욕심을 내는 이유는 미래의 꿈이 대학 강단이기 때문. 그녀는 앞으로 대학에서 연기나 연극을 강의하는 교수가 목표이다. 연예인은 그런 그녀의 꿈을 이루는 한 과정이라는 것. 방송활동 하면서 돈을 모으면 유학 가서 연극을 공부할 계획이다.
"남들은 괜히 한 번 해보는 소리라고 하는데, 글쎄요, 나중에 보면 알겠죠."
어느새 졸리고 피곤한 기색은 가시고 드라마에서 봤던 생기넘친 모습으로 돌아간 그녀를 보면서 대학 교수의 꿈이 결코 무리한 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김재범 oldfie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