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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살아보니]이다 도시/술에 恨 맺혔나요

입력 | 2000-12-28 18:34:00


한국에서 산 지가 9년이나 됐지만 아직 한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해 모르는 점이 많고 놀라는 일도 종종 있어서 남편에게 이것 저것 물어서 귀찮게 할 때가 많다. 이번 크리스마스와 연말에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프랑스에 왔지만 프랑스 TV에 비친 한국의 모습은 온통 경제 구조조정에 시달리고 멍든 우울한 모습들이다.
▼송년모임 오로지 술…술…술▼
어느 방송이나 사실보다는 다소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주변의 프랑스인들은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이 다시 3년 전과 같은 경제위기를 겪는 것은 아닌지, 많은 사람이 그렇게 어려운지 묻는데 그 때마다 나는 어렵긴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어려운 상황을 더 나은 상황으로 바꾸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한다.
한국인은 평소 열심히 일하는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마치 일 자체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많은 시간을 일하는데 투자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회 자리에서는 좀 과격해 보일 정도로 마치 1년 동안 한번도 술을 마셔보지 못한 사람들처럼 엄청난 양의 술을 마시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렇게 술자리를 마치고 나면 노래를 사랑하는 민족답게 노래방으로 몰려가 즐겁게 놀곤 하는데 놀라운 점은 직장인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일에 지치고 공부에 지쳐서인지 좀 더 재미있고 의미있는 모임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1차, 2차, 3차 하면서 식을 줄 모르는 분위기에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남자들을 자주 보는데 이런 모습이 전형적인 한국의 연말 행사처럼 돼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도 들곤 한다.
물론 요즘에는 독특하고 재미있고 의미있는 각종 이벤트로 사람들을 유도하는 회사들도 생겨났고 술만 마시기보다는 좀 다른 프로그램으로 모임을 바꾸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의 부모님은 한국 사람들이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이젠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고 말한다.
프랑스에서는 송년 모임이 다양하다. 보통 파티를 하는 모습은 무척 간소한 편이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화려한 차림으로 모여서 식사하다가 동료들끼리 안부를 묻고 새해를 축복하고 얘기하다가 음악이 나오면 모든 사람이 춤추며 깊어 가는 밤을 즐기곤 한다. 핼러윈 축제 때처럼 가면을 쓰거나 아주 요란한 의상을 입고 파티에 오는 사람도 있어서 웃고 놀리고 그런 와중에 모임은 자연히 분위기가 고조되고 즐겁게 춤추고 이야기하면서 밤을 지낸다.
이런 모임은 주로 모임을 마련한 사람이 음식 등을 준비하지만 참석자들도 음식이나 술을 가져온다. 이런 모임에 결혼한 사람은 반드시 부부가 함께 참석하고 미혼자는 애인을 동반하는 것이 관례다. 애인이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 가족과 친지들과의 모임은 별도로 다른 날을 정해 열리는데 12월 31일 저녁에 모여서 자정을 넘기며 새해를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은 한 곳에 정착해서 살아온 민족이고 여러 가지 멋있는 문화와 역사를 가진 민족이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민족보다 독특하고 흥에 넘치는 송년 모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들끼리 술만 마시면서 지치는 그런 송년 모임이 아니라 간소하더라도 정이 넘치고 흥과 멋이 어우러지는 송년 모임이 됐으면 한다.
▼情넘치고 의미있는 시간돼야▼
길을 가면서 낯선 사람들에게도, 차를 타고 가면서 다른 차의 사람들에게도 정겨운 송년 인사를 스스럼 없이 건넬 수 있는 신뢰와 정이 넘치는 따스한 송년의 밤을 그려본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나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나 각자 가진 것보다 더 높고 큰 가치를 위해 함께 살아왔고 내년에도 같이 살아갈 이웃이고 같은 사회 구성원이라는 그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면 마음 깊은 곳에 “미소가 아름다운 친절한 한국인”이라는 느낌이 차오를 수 있을 것이다.
필자:1969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태어나 프랑스 르아브로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대학 강사로 한국에 왔다가 93년 서 모씨(38)와 결혼했으며 현재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다도시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