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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최공필/투명한 市場이 경제 살린다

입력 | 2000-11-06 18:30:00


시장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 무엇일까? 기업의 영업실적이 좋지 않거나 손익구조가 나빠지는 것일까. 이런 것보다 시장이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 바로 불확실성이다. 실적이 나빠지면 시장은 가격을 내리는 방법으로 적응한다. 조정된 가격에 거래는 계속 이뤄진다. 그러나 상황파악이 안되면 가격 자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 부실기업 퇴출작업을 하는 것도 불투명성을 없애기 위해서다.

‘부실기업은 죽고, 우량기업은 산다’는 너무 단순한 명제가 제대로 작동케 하는 작업이 바로 부실기업 퇴출이다. 정부 당국과 금융권의 부실기업 퇴출 원칙이 확고할수록 주가가 올랐고, 이것저것 살리려는 움직임이 대세를 이루면 주가가 떨어진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코리아 프리미엄’이란 말이 있다. 한국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는 금리에 프리미엄이 있기 때문에(채권이 싸게 거래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한국의 시장여건이 워낙 불투명하다보니 ‘한국물’이라면 일단 한단계 내려서 평가하는 외국인투자자들의 태도가 빚은 현상이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국제무대에서 기업 내용이나 실력만큼 대접받지 못한다.

반면 미국 경제가 장기호황을 누리는 요인의 하나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모든 시스템이 가동되기 때문이다. 월가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월가는 10월 한달 동안 ‘어닝 시즌(earnings season)’을 보냈다. 뉴욕증권거래소나 나스닥 등에 상장된 기업이 3·4분기 결산실적을 발표하는 기간이었다. 그런데 실적이 주가에 반영되는 것은 9월의 ‘고백 시즌(pre―announcement season)’부터다. 기업들은 이때 가결산 내용을 발표한다. 가결산 내용을 미리 발표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의무화돼 있는 것은 아니다. 나쁜 실적을 감추고 싶은 기업은 확정치가 나올 때까지 발표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그러나 어떤 기업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가결산 발표를 하지 않으면 시장은 ‘저 기업에 뭔가 숨겨야 할 것이 있구나’라고 판단해 그 숨겨야 할 내용이 확인될 때까지 해당 주식을 내다 팔아 주가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기업의 불투명성과 시장의 불확실성을 미리 제거해주는 것. 이것이 월가나 미 정책당국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시장불안 요인에 대비하기 위한 미 정책당국의 사전 정책발표는 탄력 있게 작동하는 시장기능과 맞물려 경제 주체들에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노력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시장과 정책방향이 상호보완적으로 조화를 이룸에 따라 각종 불안요인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는 순항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한국 경제는 여전히 불확실성의 장막에 가려져 있다. 불확실한 상황의 장기화는 구조적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외국자본의 투자매력을 떨어뜨리며, 국내의 인적 물적 자본을 유출시켜 경쟁력 저하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제부터라도 불확실성을 점차 낮춰감으로써 민간의 합리적 결정을 유도하는 동시에 활력 있는 시장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몇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우선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불확실성은 정책관련 불확실성이다. 모든 정책노력은 중장기적 예산의 제약 하에서 시장의 힘을 강화하는 데 기여해야 하며 단기적 안정효과도 반드시 이런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둘째, 정책관련 불확실성을 낮추려면 시장에서의 재벌과 정부개입의 역할은 참신한 기업가 정신과 시장 자율기능으로 대체돼야 한다. 정책결정은 당국만의 책임은 아니다. 시장참여자들이 당장 편하게 지내고 싶어 당국의 무리한 요구를 떨치지 못하면 시장기능은 요원하다.

셋째, 비경제적 요인이 경제불안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을 차단해야 한다. 특정 정치집단이나 그룹이 시장을 좌우해서는 안된다. 경제가 정치논리에 영향을 받을수록 경제환경의 불확실성은 제거되기 어렵다.

넷째, 우리의 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객관적 분석작업이 진행돼야 한다. 대부분의 비정상적인 시장반응은 결국 사전에 충분히 줄일 수 있는 불확실성이 제때 제거되지 않는데서 나온다. 각종 경제분석의 목적은 당장의 정책평가보다는 정확한 현실파악을 통해 모든 경제 주체가 나름대로 필요한 준비를 하도록 도움을 주는 데 있다.

최공필(미국 샌프란시스코 연준 초빙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