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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이만우/구조조정, 시장원칙 지켜라

입력 | 2000-09-25 19:00:00


이 지경에 이르고도 정부가 효과적으로 환란을 극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지경에 이르고도 정부가 그렇게도 홍보하던 새 천년에 한반도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중심추가 과연 될 수 있을까? 감사원의 141개 공기업에 대한 감사결과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을 때 되뇐 탄식조의 물음은 비단 필자 혼자만이 가졌던 일편(一片)의 단상(斷想)만은 아닐 성싶다.

낙하산 인사에 항의하면 격려금을 지급하는 은행, 적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는 데도 국민의 혈세로 존속하고 있는 기업, 일하지 않아도 월급을 주는 기업, 업무가 없어도 감투는 늘어나는 기업, 적자는 늘어나도 급여와 퇴직금은 민간기업보다 많은 회사…. 주인 있는 민간기업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공기업들의 한심한 운영실태이다.

이 같은 공기업들의 난맥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지난 2년반 동안 정부가 그토록 외쳐온 공공 금융 기업 노동 등 4대 부문 개혁은 물거품이 아니었나를 반문케 한다. 정부조직의 효율화, 개방적 공무원 임용, 공기업의 민영화와 경영효율화를 비롯한 공공부문의 개혁은 그 가시적 성과가 가장 미흡한 분야로 이번 감사원의 감사결과로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환란의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잠재력을 복원하기 위해 마련된 4대 부문의 구조조정은 신물이 날 정도로 말만 무성했지 목표치에 크게 미달하거나 시행과정의 오류 등으로 인해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기보다는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해 자칫 경제 전체가 장기간 침체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정부는 미진한 부문별 구조조정을 내년 2월까지 마무리해 경제 전반에 걸쳐 시장경제 시스템을 정립함으로써 안정적 성장의 기반을 공고히 하겠다는 계획이다.

거시경제 지표들이 상승 국면에 있을 때는 개혁 분위기 이완과 개혁피로현상 등으로 구조조정의 호기를 잃어버리고, 실물지표의 증가세가 현저하게 둔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단시일 내에 이를 완결하겠다는 의지는 시장경제시스템의 정립이란 목표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구조조정을 효과적으로 마무리하려면 부문별 장단기 과제를 선정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경제환경에 걸맞은 정부 금융 기업간의 역할 분담이 적절히 이뤄져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시장경제시스템에 의해 자동적으로 부문별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와 경제여건의 형성에 정부는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미국은 80년대 중반 이래 10여년에 걸친 금융 및 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전후 가장 오랜 호경기를 누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제1의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 배경에는 정부와 은행, 기업간 효과적인 역할 분담을 빼놓을 수 없다. 정부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은행 퇴출과 부실채권 정리에만 그 역할을 한정하고 금융기관의 합병과 구조조정은 어디까지나 은행의 자율적 판단과 결단으로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시장 흐름에 따라 이뤄졌으며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네 실정은 어떠했던가. 98년 5월 정부가 64조원의 공적자금을 동원해 금융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10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지만 금융부실이 치유되지 않고 금융시장이 정상화되지도 않았다. 금융 및 기업의 구조조정 미흡으로 금융경색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으며 기업금융 중개기능의 미비로 경제전반의 장기침체 국면으로의 전락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국면이다.

금융부문의 지속적이고 과감한 개혁만이 기업의 긍정적 구조개혁을 유인할 수 있다. 시장경제시스템에 의한 지속적 구조조정이 자발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원칙과 투명성이 우선적으로 준수돼야 할 것이며 정부 개입에 의한 관료주의적 구조조정이 일절 배제돼야 할 것이다.

시장경제시스템의 정착은 정부의 규제완화와 시장 자율의 원칙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특정 시한을 정해 놓고 조급하게 서둘러서는 그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만우(고려대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