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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식의 과학생각]사랑의 냄새를 찾아서

입력 | 2000-09-13 18:29:00


사람들은 왜 키스를 하게 됐을까. 일설에는 체취를 교환하는 행위로 키스가 진화되었다고 한다. 연인들은 키스를 할 때 상대의 얼굴 냄새를 맡고 애무하면서 쾌감을 맛보기 마련이다.

사람은 고등 영장류 중에서 가장 냄새가 많이 난다. 역겨운 땀 냄새는 물론이고 하루에 275㎤의 방귀를 뀐다. 체취를 없애기 위해 목욕을 하고 털이 자라나지 못하게 면도하거나 향수를 바른다.

▼인간이 가장 냄새 강해▼

동물 또한 교묘한 방식으로 자신의 독특한 냄새를 풍긴다. 들쥐는 발바닥에 오줌을 뿌려 영토를 거닐 때 그 냄새가 흙에 섞이도록 한다. 누에나방의 암컷이 화학물질을 분비하면 수 ㎞ 떨어진 곳에 있는 수컷들이 털을 부들부들 떨면서 달려온다.

이와 같이 냄새는 동물이 영토를 표시화하는 일에서부터 짝을 유인하는 번식행동에 이르기까지 의사 소통의 신호로 사용된다. 다른 개체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동물의 몸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을 통틀어 페로몬(pheromone)이라고 한다.

페로몬은 코 속에 서골비(鋤骨鼻)기관(VNO)이라고 불리는 제2의 후각계통을 가진 동물의 번식행동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VNO는 서골 위에 위치한 한 쌍의 움푹 팬 곳인데, 양서류 파충류와 대부분의 포유류에서 발견된다. 가령 뱀을 보면 혀를 빈번하게 날름거려 주변의 화학신호를 포착한 다음에 VNO로 식별한다. 생쥐 수컷의 VNO를 수술로 제거하면 암컷 위로 올라타기는커녕 암컷 생식기에서 나는 냄새조차 맡으려 하지 않는다. VNO는 성 페로몬을 탐지하는 데 사용되므로 성적인 코라고 불린다. 코 안에 들어 있는 성적 기관이라는 뜻이다.

사람의 코에 서골비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학계의 정설이었다.

따라서 VNO의 탐지 대상인 페로몬이 사람의 몸에서 분비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됐다. 그런데 1986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미국 학자들이 콧구멍으로부터 약 1㎝ 뒤에서 VNO로 보이는 0.1㎜ 가량의 구멍을 두 개 발견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서골비기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그것이 함축한 의미는 실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VNO는 사람 사이에서 무의식적으로 지나가는 화학신호, 이를테면 성적 행동에 개입하는 페로몬을 탐지할 터이므로 성적 기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다시 말해서 페로몬은 5감으로는 지각이 불가능한 화학신호이므로 페로몬을 탐지하는 VNO의 존재로 인간은 제6의 감각을 갖게 되는 셈이다.

사람이 분비하는 페로몬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페로몬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단되는 사례는 몇 차례 관찰되었다.

같은 기숙사에 동거하는 여자 대학생들이나 한 집에 사는 모녀 또는 자매는 같은 기간에 생리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여자끼리 주고받는 페로몬이 월경기간을 조절한 요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인체에서 페로몬 효과를 가진 화학신호가 분비될 만한 부위로는 겨드랑이가 가장 유력하다. 겨드랑이 냄새는 연인들을 황홀하게 한다.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 시대에는 부인들이 껍질을 벗긴 사과를 겨드랑이에 끼워두었다가 땀에 흠뻑 젖으면 애인에게 건네주어 냄새를 맡도록 했다. 오늘날 발칸반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축제 동안에 사내들이 겨드랑이에 손수건을 넣고 다니다가 춤을 추는 상대에게 건네주는 풍속이 있다.

▼페로몬 향수-티슈 등 개발▼

최근에 미국 록펠러대 연구진이 생쥐의 페로몬 수용체와 유사한 단백질을 합성하는 것으로 보이는 유전자를 인체에서 발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몸에서 페로몬이 검출될 것으로 낙관하는 학자들은 많지 않다. 사람 사이에 페로몬으로 의사를 소통하는 증거가 확보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서골비 기관의 존재를 확신하는 사람들은 돈벌이 궁리에 바쁘다. 미국의 한 회사는 합성 페로몬이 포함되었다는 향수를 만들어 횡재를 꿈꾸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페로몬이 묻어 있는 티슈가 자판기에서 판매된다. 정녕 페로몬 향수나 티슈로 마음에 드는 이성을 은밀히 유혹하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인지.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