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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멀티플렉스 "넌 감상만 하니? 난 즐기러 간다!"

입력 | 2000-09-07 18:41:00


번쩍이는 네온 사인의 유혹을 따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몰 안의 메가박스에 들어서면, 눈이 휘둥그래진 방문자를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짙고 달짝지근한 팝콘 냄새다.

박스 오피스 위에 설치된 10여대의 모니터로 상영작들의 하이라이트와 시간표를 보고 입장권을 산 관객들은 메가박스 중앙에 자리잡은 패스트푸드 주문대 앞으로 가 팝콘과 콜라 세트를 사들고 16개 상영관으로 흩어진다. 극장안 의자 팔걸이에는 아예 컵 홀더가 달려있다. 엄숙하게 영화를 보기보다 먹고 마시며 즐길 것을 권유하는 것이다.

주말이나 연휴 때 서울 종로의 몇몇 큰 극장 앞에 가면 “표 얼마 안남았어요!”하는 입회인들의 ‘호객행위’를 볼 수 있지만 멀티플렉스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 보고 싶은 영화표가 매진됐으면 10∼15분 간격으로 상영이 줄을 잇는 다른 영화를 보거나, 일찌감치 예매를 해놓은 뒤 같은 건물 안의 게임 센터, 수족관, 대형서점, 패션플라자에 가서 놀다오면 된다. 멀티플렉스의 주요 관객은 ‘영화 애호가’라기보다 ‘여가의 소비자’들이다. 대형 마트와 백화점이 구멍가게를 대체했듯, 영화를 매개로 ‘원 스톱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멀티플렉스가 영화관람문화를 바꾸고 있다.

5일 오후. 또래의 중년 부인들과 함께 메가박스 매표소 위의 모니터를 열심히 들여다 보던 이은숙씨(51). “무슨 영화를 볼거냐”는 질문에 쑥스럽게 웃으며 “극장이 하도 좋다길래 구경 나왔지, 뭐” 하더니, 카운터 직원을 향해 “요즘 무슨 영화가 재미있어요?”하고 묻는다.

“볼만한 영화가 뭐냐고 묻는 관객이 많은 것도 우리가 여느 극장과 다른 점일 거예요. 보고싶은 영화를 먼저 정하기보다 일단 영화관에 온 뒤 영화를 고르는 거죠. 이 때문에 박스오피스 카운터 직원들도 상영 영화에 대한 간단한 정보는 미리 알고 있어야 해요.”(정경우·메가박스 운영팀 매니저)

그는 “20대가 많긴 해도 다른 극장에 비해 관객층이 무척 넓다는 것이 메가박스의 특징”이라며 “방학 때 한 가족이 상영관 앞에서 각자 헤어져 부모들은 ‘18세이상 관람가’영화를, 아이들은 ‘다이노소어’같은 애니메이션을 본 뒤 다시 만나는 경우도 종종 봤다”고 했다. 대개 나이 마흔줄을 넘어서면 데이트족으로 가득한 영화관이 낯설고 불편해지기 시작하지만, 멀티플렉스는 영화관을 중장년층도 거리낌없이 올 수 있는 놀이공원으로 만들었다.

5월13일 문을 연뒤 8월말까지 메가박스를 찾은 관객은 165만여명. 이같은 성공을 거둔 데에는 메가박스가 속한 코엑스 몰의 복잡한 구조가 한 몫하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주말 오후 큰 영화들이 매진됐을 때 표를 못구한 관객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여기까지 왔는데…’예요. 보고싶은 영화를 볼 수 없어도 이 복잡한 곳까지 왔으니 다른 영화라도 보는 거죠. 이 때문에 작은 영화들이 덩달아 함께 매진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강태훈·메가박스 운영팀)

일종의 의식(儀式)처럼 신경을 써야했던 영화보기가 일상화되어간다는 점도 멀티플렉스가 만들어낸 특징. 평일 밤, 메가박스는 테헤란로 부근 직장인들로 북적거리고 아파트촌 근처에 있는 CGV강변11은 편한 옷차림의 주민들로 붐빈다. 멀티플렉스 도입 10년만에 1인당 영화 관람회수가 연평균 1회에서 2.2회로 늘었다는 영국의 사례가 남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

▽멀티플렉스란?

멀티플렉스(Multiplex)란 말 그대로 상영관을 여러개 갖춘 ‘복합상영관’을 뜻한다. 보통의 기준은 쾌적한 관람환경을 보장하는 최소 6개 이상의 상영관을 포함하고 있으며 쇼핑과 외식 게임 등 놀이공간을 함께 갖춰 한 곳에서 영화 관람과 식사, 그 밖의 엔터테인먼트를 모두 즐길 수 있는 복합적인 공간을 가리킨다. 여러 개의 스크린(Multiscreen), 다양한 서비스(Multiservice), 다양한 오락(Multi entertainment)등 ‘3M’이 갖춰져야 멀티플렉스라는 말도 있다.

국내에서는 98년 제일제당과 호주의 빌리지 로드쇼가 합작해 세운 CGV강변11이 멀티플렉스 1호. 그후 전국에 CGV 체인점이 들어서고 롯데백화점이 신설 백화점마다 멀티플렉스를 만들고 동양 최대 규모인 메가박스가 5월 문을 여는 등 본격 멀티플렉스 시대가 개막했다.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