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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출판통신/파리에서]조혜영 '사르트르'

입력 | 2000-02-18 19:23:00


▼'사르트르(Sartre)' 드니 베르톨레 지음/플롱(Plon)출판사 펴냄▼

4월15일 맞게 될 사르트르 사망 20주기를 앞두고 프랑스 출판계는 벌써부터 그에 관한 새로운 평저들을 다투어 선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 책들의 대부분은 사르트르의 철학사상이나 문학작품의 분석이 아니라 그의 오류를 파헤치거나 그를 변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사르트르는 2차대전을 전후로 철학 희곡 소설 비평 등 다방면에 걸친 작품활동을 통해 실존주의의 우두머리, 그리고 참여작가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존재는 본성에 앞선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한 그의 실존철학은 인간에게는 인간적 본성이 주어져 있음을 부정하고 세계속에 던져진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벌거벗은 인간존재를 부각시켰다. ‘인간은 절대 자유이며 미래를 향한 계획에 따른 선택과 책임을 통하여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라는 것.

그의 이 무신론적 실존사상은 전쟁의 절망적 체험과 독일점령으로부터의 해방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의 많은 지성을 사로잡았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는 식민지 해방운동과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참여활동을 택했다. 그에게 소련은 인류의 유토피아였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인간 본성의 거부와 존재의 의미로서 행동만을 강조한 약점, 또 구조주의와 분석철학의 발달로 인해 철학계에서 차츰 잊혀지게 된다.

또 ‘유토피아 소련’이 착각이었음이 드러남에 따라 그의 이데올로기적 오류에 대한 비판이 시작됐다.

이번에 쏟아져 나온 저서들 중에서 베르톨레의 평론 ‘사르트르’는 그의 실수들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저자는 폴 발레리 전기로 1995년 최우수 저서상을 받은 인물. 이 책은 아버지의 부재, 어머니의 재혼 등 사르트르의 불행한 어린 시절과 철학 문학에의 재능을 발견하는 대학시절을 이야기 한 후 죽기 전까지 계속된 그의 전체주의에 대한 지적인 눈멀음을 나열한다.

가령 “소련에는 전적인 비판의 자유가 있다”(1954년) “반(反) 공산주의자는 개다”(1956년) “소련을 파시스트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1980년) “발트제국 사람들은 소련의 보호하에 물 속의 붕어와 같다” 등의 발언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유명한 저서 제목이며 그를 참여작가로 이끈 기본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가 착오에 입각한 것임을 구체적 상황을 통해 보여준다.

한편 사르트르의 실수를 옹호하는 대표적 작품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사르트르의 세기’는 그를 왜곡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실존철학가로서 한 세대의 영광이었던 사르트르는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지 못하고 ‘판단의 오류’라는 오명 속에서 배척되고 있는 것이다.

조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