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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이도성/선거革命을 이루자

입력 | 1999-12-22 19:59:00


세밑 정국이 참으로 심란하다. 새 천년, 새 세기를 숙연한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 20세기 마지막 해를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정치인들이 벌이는 어처구니없는 난장판, 소극(笑劇)으로 지새고 말았다.

급기야 김수환(金壽煥)추기경 등 종교계 원로들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향해 ‘국민회의든 신당이든 당적을 떠나, 제발 민생챙기기에 전념해달라’고 호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른바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 간 정권교체를 이룬 2년 전 이맘때쯤을 생각하면 허망해도 너무 허망한 일이다.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대로 제각각 할 말이 태산같을 것이다. 또 칼로 무 베듯이 누구 말이 옳고, 누구 말이 그르다고 양단(兩斷)하기도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은 그같은 비정(秕政)의 중심에 ‘권력의 오용(誤用)’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권력’은 그 자체로 증오나 배척의 대상이 될 까닭이 없다. 하지만 행사과정에서 ‘오용’이나 ‘남용’의 기미가 보이면 민(民)은 스스로 그 본질을 눈치채고 가차없이 등을 돌린다. 그게 권력의 철리(哲理)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힘’은 계량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것이어서 어지간해서 통제나 조작도 불가능하다. 작금의 상황에 집권세력 쪽 사람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것도 이같은 ‘민의 힘’을 체감으로 느끼기 때문이리라.

권력이 민으로부터 배척당하지 않고 존중받으려면 무엇보다 가진 쪽은 스스로 엄격하고, 가지지 못한 쪽엔 오히려 너그러워야 한다. 그 반대로 스스로에겐 관대하고, 가지지 못한 쪽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민은 그러한 권력을 여지없이 배척해버리고 만다. 올 한해 내내 나라를 소란스럽게 하고 민심을 뒤흔든 ‘옷로비’니 뭐니하는 사건도 곰곰 따져 들어가면 그 중심에 자리잡은 근인(根因)은 ‘잣대의 전도(顚倒)’, 다시 말해 ‘권력의 오용’이다.

요즘 다시 떠오른 ‘네탓’ 공방도 같은 권력마인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엄격하지 못할 때 모든 사단은 모두 ‘남의 탓’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맹종을 지지로 착각하고,비판이 훼욕(毁辱)으로만 들리게 된다.

이른바 ‘개혁 발목잡기’ 논란도 마찬가지다. 개혁을 거부하는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옷사건’만해도 빼놓을 수 없는 개혁의 대상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한해의 절반이 넘도록 기삿거리를 제공하며 개혁의 발목을 잡은 장본인들은 언론도 민도 아닌 ‘권력자’ 자신들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여(與)고 야(野)고 이미 굳어질대로 굳어진 권력마인드가 하루아침에 바뀌리라고 기대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렇다고 손놓은 채 방관해서도, 탁류에 휩쓸려가서도 안될 일이다. 새 천년, 새 세기가 시작되는 마당에 또다시 “한 나라의 정치는 국민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는 치욕적인 얘기를 들을 수는 없지 않은가.

원래 권력의 광정(匡正)은 정치인이 아니라 민의 몫이다.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다. 바로 내년 첫 선거인 ‘4·13’ 총선이다.새해 새 아침, 마음가짐을 새롭게 추스를 때 한가지만 더 단단히 다짐해두자. “이번만은 구태(舊態)에 현혹되지 말고, 밝은 눈으로, 후회없이 우리들의 대표를 뽑겠다”고…. 하여 새 세기의 첫해를 후대에 부끄럽지 않은, 명실상부한 ‘선거혁명’의 원년(元年)으로 기록하겠다고….

이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