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도청 및 불법감청 의혹과 관련해 국정원이 20일 한나라당의 이부영(李富榮)원내총무를 고소한 데 이어 한나라당도 21일 천용택(千容宅)국정원장을 고발함으로써 이 사태로 인한 정치적 파장은 갈수록 증폭되는 양상이다.
…서울지검은 21일 국정원이 이총무를 공무상 비밀누설 및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한 사건과 한나라당이 이에 맞서 천국정원장을 국정원법 및 통신비밀보호법 위반혐의 등으로 고발한 사건을 공안1부 임성덕(林成德)부부장검사에게 맡기는 등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할 계획.
◇정보입수경로에 초점
수사의 초점은 국가기밀의 범위와 국정원의 ‘통신제한 조치’의 합법성 여부. 따라서 우선적인 관심사는 이총무가 국가정보원 제8국의 편제와 기능을 어떤 경로를 통해 알게 됐느냐 하는 것.
국정원측은 이총무가 국회 정보위에서의 질의와 자료제출 요구 등을 통해 알게 된 8국(과학보안국)의 존재와 업무분장 등 기밀사항을 언론에 공표했기 때문에 형법(공무상 비밀누설 금지)과 국회법을 명백히 위반했다는 입장. 그러나 이총무는 이에 대해 “국정원은 정보위에서 8국과 9국의 존재에 대해서만 얘기했지 구체적인 기능과 편제를 얘기한 적은 없다. 제보를 받았을 뿐이며 설사 기밀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알권리 보장 차원의 행위이기 때문에 위법성이 없다”라고 반박.
○…이같은 논란과 관련, 국민회의측은 이날 “이총무는 국정원의 업무를 잘 알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며 구(舊) 안기부출신 한나라당 인사를 공격대상으로 삼고 나섰고 한나라당측은 “국정원 스스로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 폭로내용에 대해 비밀누설혐의로 고소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힐난.
한편 법조계에서는 공무상 비밀 누설혐의는 국가안보와 공공의 이익, 국민의 알 권리 등을 모두 따져야 한다는 점에서 검찰의 판단이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
◇공안부가 맡아 논란
○…이총무의 명예훼손 혐의 성립 여부는 그의 주장이 허위냐 아니냐에 따라 좌우될 일. 따라서 이총무가 제기한 ‘국정원 8국 직원 300여명의 24시간 상시(常時) 도청 감청’ 주장의 진위도 확인돼야 할 대목.
검찰은 “국민적 의혹과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므로 수사를 엄정하고 신속하게 진행하겠다”는 입장. 그러나 검찰 주변에서는 “결국은 여야의 정치적 타협에 따라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전망도 대두.
사건 수사를 공안부가 맡은 점도 논란이 야기될 부분.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국가기밀인 국정원 조직현황의 보안유지를 위해서는 공안부가 맡는 게 적당하다”고 주장하나 일각에서는 “국정원과 상호 협조관계에 있는 공안부에 수사를 맡긴 것 자체가 편파시비를 낳을 여지가 있다”는 우려도 제기.
○…국정원의 이총무 고소에 대한 법조계와 시민단체 쪽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 차병직(車炳直·참여연대 사무처장)변호사는 “국정원의 감청은 거의 공지의 사실인 이상 담당조직이 있다는 것도 공지의 사실”이라며 폭로내용 자체가 비밀이 아니라고 주장.
고계현(高桂鉉)경실련시민입법국장은 “국정원은 먼저 이총무가 제기한 도청 감청 의혹을 분명하게 해소한 다음 국가기밀보호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는 견해를 피력.
권영세(權寧世) 박형상(朴炯常)변호사는 “이총무가 관련정보를 정보위에서 취득했으면 비밀누설에 해당하지만 정보위와 무관한 통로를 통해 취득했다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
〈이수형·공종식기자〉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