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먹해진 정부와 재계간에 대화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정부가 재벌개혁 방안중 현실적인 한계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재계의 건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결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9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청와대와의 의견조율 끝에 출자총액제한제에 따른 출자한도를 2002년 3월말까지 순자산의 25%로 낮추기로 했지만 재계 의견이 상당부분 수용됐다”고 밝혔다.
◆공정위 9개항 검토
공정위측은 이에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제출한 9개항의 정책건의를 검토한 뒤 △반도체 유화 등 사업구조조정(빅딜) 참여업체 △분사(分社)업체 △사회간접자본 확충계획 참여업체 등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해주기로 하는 등 재계 의견을 상당부분 반영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자한도를 25%로 낮출 경우 2년여 남짓한 시일안에 초과출자분 12조원 이상을 해소해야 하는 데다 유상증자 등 재무구조 개선과 첨단산업 육성에도 지장을 받는다는 재계의 우려를 받아들였다는 해석이다.
공정위는 10일중 전경련측과 접촉해 재계의 의견을 청취한 뒤 최종 개혁안을 확정하고 전윤철(田允喆)위원장이 해외출장에서 돌아오는 13일경 청와대에 공식 보고할 예정이다.
◆13일경 청와대 보고
전경련은 이와 별도로 기업지배구조 개선 및 부의 편법세습을 차단할 세제개편 등과 관련해 재계 차원의 실무대책반을 내주중 구성키로 하고 9일 열린 회장단회의에 이같은 내용을 보고했다.
청와대는 지난달 25일과 이달 8일 잇달아 가진 30대그룹 총수와의 회동에서 ‘구조개혁의 원활한 실천을 위해 상호 협력한다’고 합의, 재계와의 대화채널을 열어놓았다.
손병두(孫炳斗)전경련부회장은 9일 회장단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개혁 합의안에 따른 실천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재계의 광범위한 의견을 보고서에 요약해 내주중 정부에 의견서를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략회의 설치 요청
회장단은 이날 회동에서 개혁의 목표가 산업경쟁력 강화에 있는 만큼 국정책임자와 재계대표가 공동참여하는 ‘국가경쟁력 강화 전략회의(가칭)’를 설치할 것을 요청했다. 일본의 정재계 협력모델을 염두에 둔 것이지만 재벌개혁의 현실적 걸림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8일 6∼30대 그룹총수들과의 간담회에서 “상호 협의할 사안에 대해 재계가 미리 의견을 대외적으로 공표하지 말 것”을 요청해 정재계 개혁안 협의는 물밑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