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시점에서 현 정권의 도덕적 기반에 대해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임창열(林昌烈)씨는 전정권 말기에 경제부총리까지 지낸 국제금융통으로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발탁돼 지난해 집권당 공천으로 경기지사에 당선된 인물이다. 부인 주혜란(朱惠蘭)씨 역시 개인적으로 이 정권의 고위층과 각별한 친분관계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한 지사부부의 차원을 뛰어넘어 권력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서 있는 커플로 알려져있다. 그런 부부가 지난해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앞두고 경기은행 살리기 로비자금으로 수억원을 받았다는 혐의는 국민으로 하여금 심한 분노와 허탈감에 빠지게 한다.
특히 주씨가 돈을 받은 작년 6월은 온 국민이 IMF 관리체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피땀을 흘릴 때였다.
그렇지 않아도 고관집절도사건, ‘옷 로비’의혹사건 등으로 현정권은 민심을 크게 잃고 있는 형편에 이번 사건이 터졌다. 앞의 두 사건은 당국의 진상규명 의지가 약해 의혹의 단계에 머물고 말았지만 이번 임지사부부사건은 부패의 실체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권력핵심층까지 부패에 깊이 오염돼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집권층이 그동안 외쳐온 ‘개혁’도 한낱 구호에 지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문마저 든다. 정부는 그동안의 사정작업으로 고위공직사회의 물이 맑아졌다고 자신해 왔으나 과연 그런가.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은 취임하면서 ‘부패척결’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공직자 등 사회지도층에 대한 부패척결을 제대로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검찰은 우선 임지사의 로비개입 여부를 철저히 밝혀 부패척결의지를 분명히 함과 동시에 정치적 중립성 확립의 계기로도 삼아야 할 것이다. 임지사는 부인이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실을 “그동안 전혀 몰랐다”고 발뺌하고 있으나 이 말을 곧이들을 사람은 없다. 부인이 수억원을 받아놓고도 남편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상식에 어긋난다. 돈을 준 은행간부들은 누구를 보고 돈을 줬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이 정권에서의 임지사의 위치와 영향력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검찰은 이미 오래전에 이들의 혐의를 포착하고도 시간을 끌어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 점도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임지사의 구체적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수사결과에 관계없이 그는 최소한 도의적 책임이라도 느낀다면 자신의 거취를 분명히 해야할 것이다.